앞선 세 번의 소개팅은 전부 나보다 몇 살이든 나이가 많은 오빠들이었고, 네 번째 소개팅이자 현재 기준 마지막 소개팅의 상대는 연하였다. 두 명의 동생이 있는 탓에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연애 상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나였지만, 나이를 한 살씩 먹다 보니 나보다 어린 나이도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님을 깨달았다. 어쨌거나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마주한 그의 프로필 사진은 놀랍게도 바디 프로필 사진이었다. 아직 이름밖에 모르는 소개팅 상대의 속옷 차림과 계속 대화하기가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어서 대충 만날 날만 정한 뒤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약속 날까지 그에게서 간간히 연락이 오기는 했다. 좋은 하루 보내라거나 비가 오니 우산을 챙기라거나 잘 자라는 무난한 연락이었다. 만나기 전까지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만나지도 않은 상대에게 미리 마음을 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몸을 잘 가꾸는 건실한 청년이겠거니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개인 카페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이름은 매니저지만 그냥 카페의 모든 잡다한 일을 다 했다. 사장은 카페 일보단 쇼핑이나 친구들 모임에 관심이 많아 밖으로 나돌아 다녔고, 나는 얼마 없는 손님들을 상대하며 시간 죽이는 게 주된 일이었다. 지루하고 멍청한 시간이었다. 소개팅은 각자의 회사 퇴근 후 7시로 정했는데, 그날따라 늦게까지 한 손님이 나가지 않고 있었다. 카페의 마감 시간은 8시였고, 내 퇴근 시간은 6시, 그 뒤 2시간은 사장이 봐야 했지만 오전에 나간 사장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손님을 두고 영업장을 비울 수도 없어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연락했다. 그는 개의치 말라며 일찍 도착하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쇼핑이나 하고 있겠다고 했다. 남은 손님만 나가면 바로 퇴근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해두고 부랴부랴 퇴근길에 올랐다.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다시 연락을 하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그는 연락이 없었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렀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차할 장소를 찾지 못해서 늦는다는 거였다. 언제 도착해서 어디에 주차를 하길래 자리를 못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하고 오라고 말했다. 마음속 점수판에서 10점이 깎였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보니 지칠 대로 지쳤고, 설렘이나 기대 같은 것들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지각에 대한 사과는 가볍게 넘기고, 자신이 봐둔 카페가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실제로 만난 그는 프로필 사진 속 얼굴과는 매우 달라 보였고, 문자보다 좀 더 발랄한 청년이었다.
그가 봐둔 곳은 최근에 생긴 브런치 카페였다. 공간이 넓고 쾌적했다. 커피와 케이크 하나를 주문하고 직원이 건네주는 진동벨을 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는 비웃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같은 카페 직원이라고 예의 차리는 거예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이해할 수 없어 “뭐가요?”라고 되물으니 “고맙다고 인사하는 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카페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들의 수고를 알아서 인사하냐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카페에서 일하지 않는 그는 평소에 그들에게 전혀 인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마이너스 10점.
서로에게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주고받으며 지겹고 어색한 소개팅의 격식을 차렸다. 그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며 새벽에 출근하기 때문에 밤 10시면 잠에 든다고 했다. 그때가 이미 8시를 넘긴 시각이었기 때문에 대충 한 시간 지난 후에 헤어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할 얘기가 없어 프로필 사진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신이 났다. 팬티만 걸친 자신의 맨몸을 여러 장 보여줬다. 어떠냐고 묻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겠다고 말해줬다. 그는 닭 가슴살 먹는 게 지겨워 막판에는 우유 넣고 갈아 마셨다며 나에게 바디 프로필 찍어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갑자기 여러 여성들의 바디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찍어보라고, 이런 콘셉트는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별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장장 20분 정도를 바디 프로필의 장점에 대해 떠들었다. 장점이라고 해서 많은 것도 아니고, 한 마디로 젊은 날 예쁜 몸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지금 그 몸을 계속 유지하고 있냐고 물으니 이미 근육들이 사라진 지 오래랬다. 계속 두면 헤어질 때까지 바디 프로필 얘기만 할 것 같아 자취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취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다고 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자유롭고 재밌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외롭고 쓸쓸해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결혼이 하고 싶다고 하며 그가 내게 물었다. “누나는 결혼 안 하고 싶어요? 결혼 생각 있어요?” 주선자는 분명 가볍게 한 번 만나보랬는데, 그는 결혼 상대를 찾는 듯했다. 아직은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다고 하자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의 나이가 많지 않았기에 왜 그렇게 빨리 결혼하고 싶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 집이 너무 쓸쓸해요. 지치고 피곤한데 혼자 밥 차려먹는 게 힘들어요. 결혼하면 와이프가 저녁 차려놓고 기다릴 거잖아요.”
마이너스 50점. 결혼 생각이 있다가도 없어질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결혼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가정부를 찾는 것 아니니,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와이프도 직장 다니면 저녁 차려놓고 기다리기 힘들지 않겠냐고 돌려 말하니, 결혼하면 직장을 관뒀으면 좋겠단다. 그의 결혼관은 매우 확고해 보였고, 굳이 내가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와 나는 공통점이 별로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는 재미가 없었다. 커피와 케이크는 바닥을 보인 지 오래였고, 시간은 9시를 넘어가고 있어서 그만 일어나자고 말했더니 의외로 그는 시간을 끌었다. 10시에 자려면 지금 가야 한다고 말해도 그는 좀 더 있다 가자고 떼를 썼다. 더 할 이야기도 없었는데 도대체 버티는 이유를 몰랐지만, 주선자 얼굴을 떠올리며 조금 더 견뎌보기로 했다. 30분을 가까스로 견디고 또 한 번 귀가를 제안했는데 이번에도 거절. 왜? 너도 재미없잖아, 집에 좀 가자, 10시에 잔다며?라고 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고 어린애 다루듯 몇 번 더 설득했다. 헤어지자는 것도 설득을 해야 하나, 이게 소개팅이 맞나 싶은 기분이 들 무렵 그는 드디어 일어났다. 카페를 나와 같이 걸어가는데 그는 장범준의 노래를 흥얼거리더니 가방을 뒤적거려 러닝 할 때 쓸 헤어밴드를 샀다며 꺼내서 보여줬다. 그걸 사느라 늦었다는 거였다. 이미 다 깎인 점수에 마이너스를 더 추가하며 그는 쿨하게 멀어졌다. 그 뒤로 몇 번 더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크게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었고 그렇게 끝났다.
그와의 소개팅을 마지막으로 그 뒤로는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소개팅이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딱히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소개팅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낯선 사람을 대면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취미나 특기나 그런 것들을 내숭 떨며 주고받는 것도, 앞에 앉은 상대에게 매력적인 이성으로 보이기 위해 긴장하며 있는 것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는 게 내게는 남는 장사였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중에 한 명쯤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의 취미나 그 밖의 많은 것들이 궁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할 것이고, 거기에 쏟을 시간이나 노력이나 돈 같은 것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소개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만남은 더더욱 어려워지는데 소개팅은 싫으니 오랜 시간 혼자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주선자로부터 마지막 소개팅 상대의 소식을 들었다. 혼전임신으로 급하게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결혼하고 싶다더니 소원대로 되었다고 가닿지 않을 축하를 전했다. 그와 결혼한 여자는 직장을 관뒀을까. 그가 바라던 대로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저녁을 차려두고 기다리고 있을까.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까. 단란한 가족의 그림 속 앞치마를 두른 와이프에 나를 대입해 봤지만 어쩐지 그런 내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가 그날 약속시간을 제 때 지키고, 직업에 대한 편견 없이 예의 바르고, 결혼관을 비롯해 많은 부분들이 나와 잘 맞았다면 그와 나는 지금쯤 결혼에 도달해 있을까. 만약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지만, 그중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확신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지나간 일에 만약을 붙이는 행위를 관둔다. 그와의 소개팅 경험은 나에게 소중하다. 더 이상 소개팅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경험이었다. 주제넘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가 조금은 변화했길 바란다. 동반자와 가정부를 구분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좋은 아빠가 되기를. 한 때 소개팅 상대였던 사람으로서 작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
2023. 08. 17.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