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큰 대학병원이 있다. 그래서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 앰뷸런스가 지나다닌다.
내가 사는 곳은 왕복 8차선 대로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서 창문을 열어두면 사이렌 소리가 엄청나다. 응급한 사람이 저렇게나 많은 것에 매번 놀란다. 딱 한 번 그 대학병원에 가봤다. 아파서는 아니고 빵집을 찾다 길을 잃었다. 분명히 지도가 시키는 대로 들어갔는데, 대학병원 지하였다. 방역이 철저하던 때라 키오스크에 신상정보까지 입력하고 대기표를 확인받고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해서 빵을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입장 과정이 복잡했다.
지도에 따르면 내가 찾는 빵집은 지하에 있는 듯했는데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원에 압도되었다. 식당가가 자리 잡고 있었고, 편의점이나 옷가게도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요새 같은 곳이었다. 로비의 인테리어는 호텔인가 착각이 들만큼 호화로웠다.
대체로 튼튼해서 큰 병원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새삼 대학병원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며 감탄에 가까운 눈빛으로 둘러봤다. 병원은 단단하고 평안해 보여서 이곳에 아픈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내가 찾는 빵집은 병원 내부가 아니라 외부 통로로 연결된 곳에 있어서 금방 병원을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한 경험은 딱 한 번이다. 언젠가부터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그저 근육이 뭉쳐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만질수록 뭔가 동그란 것이 잡혔다. 검사해 보니 지방종이랬다. 나쁜 건 아니라서 그냥 둬도 된 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가 무겁고 손이 저릿한 느낌도 들었다. 결국 제거 수술을 받기로 하고 다시 검사하니 그동안 더 자랐단다. 알 수 없는 뭔가가 내 몸에서 무럭무럭 자란다니 끔찍했다. 그것도 생명이 있어서 내가 먹고 마시는 걸 양분 삼아 자라는 걸까. 몸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이 자라고 사라지는 상상을 하니, 내 몸이 얼마나 약하고 동시에 강한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방종의 크기는 약 10cm 정도였는데, 부분마취 만으로는 섬세하게 떼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눈에 보이는 위치니 최대한 흉터를 아래쪽으로 내서 제거하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전신마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차라리 전신마취가 나았다. 정신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온갖 소리를 들으며 끙끙대는 건 지방종이 자라는 것보다 끔찍했다.
수술을 위해 금식을 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비어서인지 수술에 대한 긴장감인지 몰랐다. 전신마취가 낫다고는 했지만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은 두려웠다. 수술대에 모로 누워 분주히 움직이는 간호사 선생님을 봤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을 보니 더 긴장이 됐다. 큰 병원에서 하는 큰 수술도 아니었는데 수술실 공기가 너무 냉랭해서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마취약을 주입했다. 보통 10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라고 한다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근데 내 뒤에서 철제 기구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사랑니를 뺄 때 마취가 풀려서 두 번씩 마취를 하곤 했는데, 수면마취도 풀렸나 보다 생각했다. 절박하게 손을 뻗으며 “저 마취가 안 된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다정하게도 “네, 환자분 수술 다 끝났습니다.”라고 하셨다. 숫자를 셀 새도 없이 잠에 취해있던 사이 모든 수술은 끝나 있었다. 혼자 찰나의 순간이라고 생각한 시간 동안 내 어깨에서 지방종이란 놈은 사라졌다. 엄마한테 전해 듣기론 회복실에 있는 동안에도 뭐라 뭐라 계속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순간을 대비해 평소에 행실을 좀 바르게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면마취는 잘 듣는 몸이라서 다행이었다.
마취가 빨리 깰 수 있도록 자지 말고 목이 아파도 계속 말을 하라고 했다. 분명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내 몸과 침대 사이에 투명한 한 겹의 레이어가 더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몽롱하고 현실에 없는 것 같은 생소한 감각이 불편하면서도 편안했다.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은 나른한 감각이 계속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엄마한테 “사람들이 이래서 약을 하나 봐.”라고 했는데, 조금 지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그 말을 바로 취소했다. 마취가 깨고 나서도 내내 몽롱했고 속도 울렁거려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입원실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2인실을 썼는데, 같이 입원한 다른 환자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쉬지 않고 통화하고, 계속해서 냉장고 문을 열며 뭔가를 먹고 마셨다. 어디가 아파서 입원한 사람인지 궁금했다.
나는 머리가 아프고 몸도 묵직하고, 마취가 깨니 오른쪽 어깨의 통증이 느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커튼을 치고 입원 동기의 부산함을 들으며 아프다는 건 이렇게 지난한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수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뒤의 무수히 많은 고통을 견디는 것. 삶의 반 이상을 수술과 병원을 반복하며 살았던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겨우 지방종 하나 떼어내도 이렇게 아픈데, 왜 생겨나는지 모르는 온갖 것들을 빼내고 잘라낸 할머니의 칼자국난 뱃가죽을 떠올렸다. 그 삶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보려 노력한 적 조차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시렸다. 아프다는 건 사람을 이렇게나 약하게 만든다. 2인 병동은 쾌적하고 안락한 느낌마저 들었으나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일은 왠지 서글프고 외로웠다.
지방종은 어깨에 작은 흉터와 서글픈 기억을 남겼다. 그 뒤로 감기나 전염병에도 걸렸지만 대체로 건강하게 지내왔다. 그러다가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반사적으로 응급차 안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의 무사를 빌어본다. 부디 무사하시길.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과 그를 치료한 모든 이들이 무사한 밤을 보내길. 때때로 얄팍한 경험도 세상을 넓힌다.
2023. 6. 20.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