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아이스크림 할인점들이 남았다. 선택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판매원이 없는 곳은 편리하다. 충분히 고민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단 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예외다. 취향은 한 결로 정해지지 않아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고르는 아이스크림이 다르다.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결국 골라 들게 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익숙한 맛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추억의 아이스크림들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사달라고 당당히 요구는 못하고, 혹여 말을 잘 들으면 사주지 않을까 눈치만 보던 시절의 것들. 그러나 내게는 반갑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하나 있다. 아이스크림의 잘못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피하게 되는 아이스크림. 결코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그 해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하기도 했고, 우리 집에 컴퓨터가 생기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나라가 4강에 간 것보다 내가 집에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 더 기뻤다. 그때도 지금도 얼리어답터는커녕 기계치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반에는 핸드폰을 가진 아이들도 하나 둘 생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열한 살의 아이들이 인터넷에 활발히 접속하며 놀지 않던 시절이었다. 딱히 놀 거리가 없던 우리는 그저 이 쪽 놀이터에서 저 쪽 놀이터로, 이 친구 집에서 저 친구 집으로 우르르 몰려다녔다. 놀다가 배고파지면 컵에 담긴 떡볶이나 피카추 모양의 돈가스 같은 걸 몇 백 원 주고 사 먹었다. 그럼 그날 하루 잘 논게 되었다.
적당한 순수함이 있었던 4학년 여자애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놀이터에는 타이어 그네가 있었다. 말 그대로 타이어를 줄에 매달아 그네처럼 탈 수 있게 한 것이었는데, 일반 그네와 다르게 여러 명이 붙어 탈 수 있었다. 타이어 구멍 안으로 발을 집어넣어 앉거나 밖으로 빼고 앉거나 하여튼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는 상태로 자리를 잡으면 누군가 ‘간다~’를 외치며 무거운 그네를 민다. 힘을 써야만 놀 수 있는 놀이들이 많았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손으로 무언가 만지며 주물럭거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게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했다. 한창 광고하던 초코맛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일반 쭈쭈바와 다르게 고무처럼 탄성 있는 재질에 담겨있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다. 다들 그 아이스크림을 떠올린 듯했고, 친구 중 하나가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라고 하니 다들 동조하며 타이어에서 내려오던 참이었다. 그때 남자가 벤치에서 일어섰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그 아이스크림이 남자의 다리 사이에 달려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남자의 성기였던 것이다. 어릴 때야 남동생의 성기도 보곤 했지만, 성인 남자의 성기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지퍼 사이로 내놓은 모양으로는.
우리는 사고회로가 정지된 채 다가오는 남자를 조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태연하게도 우리에게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긋하고 담백한 목소리였다. 우리 중 씩씩하고 당찬 친구가 약간의 비장함을 담아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설명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그 친구 뒤로 슬금슬금 숨었다. 그러자 남자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한 뒤 자신의 성기를 다시 만지며 만져볼래?라고 물었다. 씩씩한 친구가 다시 씩씩하게 아니요,라고 답했는데 남자는 웃으며 한 걸음 더 다가오면서 “왜~ 이거 좋은 건데 한 번 만져봐.” 했다.
그 순간 우리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내달렸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다 멈춰서 뒤를 보니 남자는 태연하게 버스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모였지만 아이스크림이고 떡볶이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져서 조금 어색하게 헤어졌다.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피아노를 쳤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속이 메슥거리고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죄를 지은 것처럼 몸이 떨렸다. 평소엔 연습을 하래도 싫었던 피아노를 왜 쳤는지 모르겠지만 무서움을 떨칠 방법을 몰라 뭐라도 두드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났지만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술자리 농담처럼 꺼내놓을 때도 있었지만 생각할수록 농담으로 여기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 남자는 젊었다.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린, 이십 대 초반 정도의 남자였을지 모른다. 남자의 태연함이 징그러웠다. 한두 번이 아닌 듯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어린 여자애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성기를 만지던 남자. 담백하게 만져보겠냐고 묻던 남자. 나는 명백히 잘못된 행위라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다. 남자가 평범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실체를 가지고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와 성희롱, 성폭행 같은 단어가 묶이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 남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태연하고 담백한 미소와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뉴스에 나오는 아이들 중 하나가 내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쳐 눈물이 났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경험은 내 삶 전반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 아이스크림의 맛은 끝까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다. 인간 이하의 인간이 그렇게나 많다는 게, 그런 인간들이 제대로 벌을 받지도 않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게, 태연한 얼굴로 내 옆을 지나다닌다는 게 소름 돋게 끔찍하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약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상처 입어서는 안 된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슬퍼하거나 막연하게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았으면 한다. 모든 아이들이 나쁜 일을 겪지 않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건강한 어른으로 자랐으면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2023. 6. 22.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