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가 있냐고 한다면 성대모사 능력이 있다. 목소리를 완전히 따라 하는 건 아니라서 성대를 모사한다고 하긴 좀 그렇고, 말투나 표정, 행동을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으니 그저 모사가 더 맞는 것 같다. 근데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하지는 못한다. 내 모사 능력은 어디까지나 주변인에 한정되어 있어서 그 인물을 아는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한정된 개인기를 처음 발현했던 때는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행동의 반경이 학교까지다 보니 학교의 인물들이 대상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습관적 말투, 늘 비슷한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특징 있는 친구들의 목소리 등을 흉내 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는데, 심한 괴롭힘은 아니었지만 괴로웠다. 그들은 내 뒤에서 들으란 듯이 욕을 했다. “쟤 담임 따라 하는 거 비슷하지도 않은데 존나 나대.”
그것 때문에 왕따를 당한 건 아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따라 하기를 그만뒀다. 조용히 살아가다가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한번 능력이 튀어나왔다. 언제나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해서 국어 선생님들을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은 특히 좋아했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섬세하고 차분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우리에게 읊어 주기도 했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감미로운데도 자꾸 웃음이 났다.
그↗가↘ 나으↘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이렇게 들렸다. 나는 그걸 곧잘 흉내 냈고 선생님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본인이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다며 다시 읊어보았지만 나랑 너무도 흡사해 모두를 웃겼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모사했다.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달하기 위해 인물들을 조금씩 따라 하면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술자리에 가면 꼭 누군가 모사를 요청하고 나는 기꺼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 일조했다.
근데 어쩐지 유명인은 잘 안 된다. 몇 번 시도해 본 적은 있다. 유행하던 드라마 속 캐릭터나 유행어를 따라 해 봤는데 내가 듣기에도 별로 안 비슷했다. 그나마 모창은 조금 할만해서 가수 박정현을 따라 해 봤다. 목소리는 덜 비슷해도 특유의 발음이나 발성을 비슷하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를 끝까지 모창으로 부르는 게 힘들었다. 모창 없이도 힘든 일이었다. 그다음은 정인을 따라 해 봤다. 목소리가 낮고 약간 걸걸한 느낌이 있어 수월하게 따라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노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 모창은 개인기로 발전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돌도 돌아 주변인 모사에만 그치게 된다. 유명인은 잘 따라 할 수 없는데 주변인만 모사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건 거리와 애정의 차이가 아닐까. 유명인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게 고작이지만, 주변인은 나와 함께 생활하니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 물론 유명인도 사소한 부분까지 찾아볼 수 있겠지만 그만큼의 애정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를 따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계속 지켜본 거다. 당황할 때 짓는 표정, 기쁠 때 웃는 소리, 습관적으로 어깨를 들썩이거나 머리를 긁는 행동 같은 것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이 자연스럽게 내게도 익숙해진 것이다. 주변인 모사는 내가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증거다. 그래서 나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행동과 말투와 습관을 재현할 수 있다. 돌아보면 내가 비슷하게 따라한 사람들은 다 내 애정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선생님들과 친구들, 회사 동료들. 주변인 모사는 그들을 향한 내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너에 대해 관심이 많아, 그래서 이렇게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모사하며 살아갈 것 같다. 이 능력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만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다. 나 아닌 세계로 눈을 돌리고 집중을 쏟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성실히 해 나가고 싶다. 다음 애정의 상대는 누구일지 두근거리며 살아간다.
2023. 6. 21.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