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을 잘 대하지 못한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데, 과연 위로가 될지도 잘 모르겠고 위로한답시고 더 상처를 주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공감도 잘하고 말도 잘해서 고민상담 같은 것도 곧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큰 슬픔을 지닌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 많이 잃으며 살아오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학동기 중에 결혼에 성공한 캠퍼스커플이 있다. 커플 중에서 남자인 H와 먼저 친했고, 나중에는 여자인 S와도 친해져서 다른 친구인 W까지 넷이서 잘 어울려 놀았다. 그들은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웃기고 무해한 커플이었다. 결혼 생활 역시 그들답게 소담하고 귀여웠다. 결혼을 꿈꾸지 않는 나도, 그들을 보면 결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정도였다. 우리는 졸업 후에도 간혹 만났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내 좁은 인간관계에서 꽤 큰 범위를 차지하는 이들이었다.
오랜만에 H를 만나 땀을 흘리며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해 꿉꿉함이 몸에 들러붙는 날씨였다. 곳곳에 있는 웅덩이를 피해 걸으며 누가 먼저 갈 것인가 실랑이를 했다. 그는 툭, 유산소식을 전했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에게 결혼이란 너무 먼 일이었으며 임신은 물론 유산 또한 내 삶에는 아직 적힌 적 없는 단어였다. 그래서 고작 ‘언제?’라고 물었다. S가 아이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화목한 집안을 꿈꾸며 착실히 살아온 그 애의 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H는 이미 몇 달 지난 일이며 아주 초기였기 때문에 형태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담담해서 되려 내가 먹먹해졌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눈물과 절망과 자책과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쉬이 담담해질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속에 자라는 생명을 생각해 봤다. 내 뱃속에서 숨을 쉬다 갑자기 사라진 어떤 생명을. 아무리 상상력을 펼쳐 봐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또 고작 한다는 말이 ‘힘들었겠다. 고생했네.’ 따위였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었다. 어떤 위로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H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돌아오는 길이 썼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늦추게 됐다. 세상엔 겪지 않아도 될 아픔들이 많았고, 불공평하게도 착하고 성실한 이들이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인사팀에서 일할 때도 그런 먹먹한 순간들을 마주쳤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게 내 일이었다. 경조사비용이나 휴가를 지원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서류들이 있는데 결혼은 청첩장, 환갑이나 칠순은 가족관계증명서, 장례는 사망진단서 등이다. 서류는 그저 서류일 뿐이지만, 그들의 기쁘고 슬픈 일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완전히 모르는 타인은 아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누군가의 사망진단서를 확인하는 일은 유독 사적인 감정이 개입됐다. 그것들은 품의서에도 첨부되고, 회계 전표에도 증빙자료가 된다. 나는 그것을 매우 유심하게 봤다. 어떤 할머니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돌아가셨으며 그래서 얼마나 긴 세월을 사셨는지 봤다. 무엇이 그녀를 데려갔는지 봤다. 동료는 그거 그냥 이름과 날짜만 확인하고 첨부하면 된다고 했다. 알고 있는데도 그게 잘 안 됐다. 그 할머니를 전혀 모르고, 심지어 서류를 제출한 직원도 잘 모르지만 그런 서류에 마음이 한참 머물러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지만, 어린 죽음은 슬프다는 말조차 꺼내기 힘겹게 만들었다.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한 아이를 잃은 사람이 있었다. 남은 아이와 산모도 위험해서 큰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나와도 친분이 있는 분이셨는데 뭐라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한 생명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한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사망진단서에는 ‘OOO아기 2’라고 적혀있었다.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고 떠나버린 생명이 너무 가볍고 또 너무 무거워서 울 것 같았다. 울 것 같은 마음을 가지도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해서 더 슬펐다.
S에게 맛있는 거라도 사주며 위로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삶이 척척해서 시간은 계속 틈을 벌렸다. 우연하게 그들이 새로운 생명을 만났다는 걸 알게 됐다. 조심스러워 오래도록 주변에도 숨긴 모양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쉽게 연락하지 못했다. 볕이 좋던 아침에 산책을 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그들을 떠올렸다. 대학시절 내내 붙어 다니며 하루는 티격태격하고, 하루는 애틋하던 그 애들. 나와 술을 마시고 과제를 하며 함께 여행을 다니던 그 애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그 애들. 그리고 종이에 뭉툭한 연필을 꾹꾹 눌러쓰듯 자판을 하나씩 쳐서 S에게 마음을 보냈다. 그간의 우려와 걱정, 불안과 아픔을 나는 전혀 헤아릴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낸 너의 강함만은 안다고 썼다. 축하라는 단어보다 더 큰 마음으로 축하한다고 썼다. 착실하고 꿋꿋한 너희들이 대견하고 존경스럽다고 썼다. 출산과 육아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지만, 너희라면 만만하지 않은 일도 기꺼이 잘 해내서 좋은 엄마와 아빠가 될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썼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희들을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가 아닌 이름으로 부를 친구로 있겠다고 썼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축하의 기회를 꼭 잡았다. 조만간 H를 꼭 빼다 박아 유전자의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아이를 보러 갈 것이다. 지나간 아픔과 슬픔을 묻은 채 단단한 어른이 된 나의 친구들을 온 마음으로 축하하러 갈 것이다. 여전히 큰 슬픔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지만, 진심으로 축하는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음을 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큰 슬픔에도 위로다운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착하고 무해한 이들에게 축하만을 전하며 살 수 있길 욕심 내본다.
2023. 6. 30.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