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소위 ‘논다’는 친구들과 놀았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그런 방향으로 가버렸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는 그 방향에 끼지는 못하면서 그들과의 친분은 유지한 어중간한 학생이 되었다. 그들이 음지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나쁜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저 술, 담배를 하며 몰려다니는 불량한 학생들이었다. 문장이 모순되는 것 같지만, 반항심과 호기심이 뒤섞인 나이였다. 어린 나이의 반항으로는 술보다 담배가 제격이었고, 담배를 구하는 게 더 쉬웠다. 부피감의 차이일까.
빠르게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담배에 손을 댄 친구들이 있었다. 당연히 가게에서 살 수는 없었고, 아빠의 담배를 훔치거나 누군가에게 사달라고 부탁했다. 주로 학교를 졸업한 중학생 오빠가 담배를 구해서 학교 화단에 숨겨 놓곤 했는데, 그땐 매우 어른처럼 느껴졌으나 고작 열네 살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담배를 잘도 구했는지 모르겠다. 어둑해지면 몇몇이 보물찾기 하듯 담배를 찾아 학교 운동장에서 피우곤 했다. 처음 친구들을 따라 담배를 찾아본 날을 기억한다. 그 시간이면 아마도 태권도장에서 운동을 마친 후였을 것이다. 몸과 정신을 수련하고 깨끗한 상태로 담배를 찾아냈다. 친구들 중 하나가 내게 담배를 건넸지만 거절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엄했고, 나는 겁이 많고 소심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옷에 냄새가 밸까 봐 멀찍이 떨어져 운동장 위로 연기를 뿜는 이들을 지켜봤다. 매우 익숙하게 연기를 뱉어내는 친구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던 밤이었다. 하얀 도복과 까만 밤공기, 그 사이를 채우는 매캐한 연기가 유독 뇌리에 박혔다. 그 뒤로도 어디서 그렇게 담배가 생기는지 몇 번 더 권유받았는데, 그럴수록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게 되면 어떤 벽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친구들도 더 이상 내게 담배를 권하지 않았다. 중학교에 가면서 얼떨결에 시험을 잘 봐 모범생의 이미지를 쓴 나에게 오히려 공부를 권했다. 앞에서 말했듯 불량하지만 착한 친구들이었다. 또 어렵게 구한 담배를 굳이 싫다는 이에게 나눌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오기와 두려움으로 거절한 담배는 그 뒤로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기회가 생겨도 딱히 피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담배 연기가 싫었다.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흡연하는 이들을 질색했다. 아무 데나 침을 뱉거나 꽁초를 버리고, 길을 걸어가며 혹은 자전거를 타며 연기를 흩날리는 이들은 혐오스러웠다. 몸에 좋지도 않은 걸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왜 피우는 것일까? 향기로운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연기일 뿐인데 왜들 그렇게 많이 피우는 걸까.
회사생활은 지독했다. 사람도 일도 힘들었다. 날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했다. 거래처의 날 선 전화를 받거나 맞지 않는 숫자를 끼워 맞추며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화장실에서 혼자 숨죽여 우는 날이 늘었고, 영혼이 메말라간다는 말의 실체를 느껴갔다. 윗사람의 변덕이나 맞지 않는 논리에 맞춰 일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동료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일이 많아져 떠날 수 없는 처지가 슬펐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만 일이 더 많아지는 희한한 구조의 회사였다. 성실한 근로자들은 비관에 젖어 술과 담배를 늘려갔다. 흡연자들은 옥상을 방문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비 흡연자이자 애주가로서,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에 술 한 잔이 절실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하루를 마치기가 힘든 나날이었다.
하루는 흡연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했다가 얼떨결에 담배를 건네받았다. 이미 술을 거하게 마셔서 그런지 거부감은 없었다. 당연히 십 대가 아니었으니 무섭지도 않았다. 그들이 일러주는 대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순간 빨아들였다. 뭔가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그들은 열정적이고 소상하게도 내게 가르침을 선사했다. 연기를 어떻게 빨아들이고, 멈추고, 다시 뱉어내는지 단계별로 가르쳐줬다. 예전 남자친구는 담배를 처음 피우면 기침이 나고 머리가 띵하며 ‘너 쓰러질지도 몰라’라고 겁을 줬었는데, 그건 정말 겁을 준거였구나 싶었다. 나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의 자세로 기침 한 번 하지 않으며 모든 단계를 한 개비로 습득했다. 스승들은 나의 재능을 놀라워하며 ‘전생에 골초’라는 칭찬스티커를 붙여줬다. 그렇게 스스로 금기했던 일을 어기는 데에 쾌감이 있었다. 이십 년 간의 금기였는데 해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금기하고 있는 다른 일들도 해보고 나면 별 게 아닐지 모른다.
그 뒤로 하루가 힘들어 술을 마시면 흡연자들의 담배를 빌려 공기 중에 담배연기와 함께 숨을 뱉어내곤 했다. 반항심이나 호기심도 아니었고, 멋있어 보이려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좋은 구석은 하나도 없는 화학물질들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동작으로 꺼림칙한 것들을 떨쳐내고 싶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나쁜 말들, 지난한 업무들, 이기적인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들, 돈 앞에 숙이고야 마는 비참한 상황들.
총 다섯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 그때 뱉은 숨들엔 타르나 니코틴 보다 더 악질적이고 고통스러운 것들이 담겨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담배를 피운다면 세상은 독한 연기에 잠겨 질식할 게 분명했다.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피우는 담배는 위험했다. 습관적으로 피우는 사람들, 멋으로 피우는 사람들, 재미로 피우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벼운 기호식품으로 즐기는 게 되려 건강한 일인 것 같았다. 너무 깊은 담배 연기는 서글펐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이도 없고,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없다. 그래서 그만큼 술을 마시지 않고, 술을 마셔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담배는 다섯 개비로 충분했다. 딱 다섯 개비만큼 힘든 계절이었고, 계절은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다시 힘든 계절이 돌아올지 모르지만 담배는 피우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더 절제하지 못하면 나는 아마 ‘현생의 골초’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늦게 배운 담배는 위험하니까, 담배의 계절이 다시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023. 7. 3.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