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걸 알고도 쉽게 지우지 못하는 꿈들이 있다. 꿈을 상당히 생생하게 꾸는 편이라 불길하거나 무서운 꿈을 꾸면 꼭 해몽을 찾아본다. 대체로 나쁜 꿈들은 길몽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큰 남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꿈을 꿨다. 회사로부터 그렇게 됐다는 얘기만 들었고, 전화는 엄마가 받았다. 나는 두 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나눈 카톡을 보며 엄청 울었다.
걔가 갑자기 문신을 하겠다고 했고, 나는 헛소리하지 말라는 답장을 보냈다. 내 말풍선의 1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탈했다. 이제 나랑 놀아줄 웃기는 놈이 없다니. 꿈인데도 속이 울렁거리고 귀가 먹먹해지게 울었다.
다음 장면은 궁이 있는 공원이었는데, 저 멀리 벤치에 동생처럼 생긴 애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동생이었다. 또다시 믿을 수 없어서 걔를 붙잡고 엉엉 울었는데, 걔는 태연하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일을 했다. 나는 계속 뭐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중얼거리며 미친 사람처럼 울었는데, 걔는 상사랑 얘기하면서 이거 확인하고 어쩌고 하며 나를 달래거나 설명도 안 해줬다.
울다가 눈을 뜨니 새벽녘이었다. 한동안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서성거리며 꿈에서 이어지는 감정을 안고 혼자 울었다. 해몽을 찾아보니 동생이 잘 풀린다는 좋은 징조랬다. 누군가는 꿈은 꿈일 뿐이니 너무 괘념치 말랬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동생이 일어날 시간 즈음에 별일 없냐고 연락했다. 동생은 아무 일 없다고 했다. 아무 일 없다는 문장은 분명한 안심을 줬다.
그가 실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 날이었다. 나는 여섯 살, 동생은 세 살, 막내는 아직 엄마 뱃속에 있었다. 어른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동안, 죽음을 몰랐던 어린애들은 산소 밑에 있는 논밭 근처에서 놀았다. 둑이 쌓여있는 곳에서 논을 내려다보니 개구리가 뛰고 있었다. 세 살배기 동생은 개구리를 신기해하며 돌이나 나무 막대기를 던졌는데, 던지는 힘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높은 높이였고, 얼굴부터 논에 처박힌 동생은 다리를 버둥거렸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달렸다. 시사 프로그램의 몰래카메라 앵글처럼 마구잡이로 흔들리며 좁아졌던 시야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른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가 내 동생이 빠졌다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판단을 하고 움직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친척 중 누군가가 재빠르게 달려가 동생을 건져 올렸다. 코와 입과 눈으로 들어간 진흙을 한참 빼냈다고 들었다. 친척들은 지금도 산소에 가면 그 얘기를 꺼낸다. 어린 내가 같이 뛰어들지 않고 도움을 청한 게 영특했다고 한다. 동생에게 조금만 늦었으면 넌 지금 여기 없다는 농담도 웃으며 한다. 나도 거기에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라’는 말을 얹는다. 동생은 그 이후로 크게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으며 건강하게 살아오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막내 동생은 나이차 때문인지 막내라는 단어 때문인지 그저 어린 동생으로 느껴진다면, 큰 동생은 내게 좀 더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그가 태어나 처음으로 집에 왔을 때,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조그만 아기를 보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다 지쳐 잠들었다고 한다. 오로지 나에게만 향하던 관심과 사랑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고 나눠지는 순간을 분명히 느꼈으리라. 그는 부모의 사랑을 두고 싸우는 최초의 경쟁자였고, 같은 만화를 보고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최초의 친구였다. 나는 그와 부대끼며 세상의 어떤 방법들을 배웠다. 권위를 내세우는 법, 기분 나쁘게 약 올리는 법, 무시하고 깔보는 법, 싸우고 화해하는 법, 먼저 손을 내미는 법, 양보하는 법, 마음을 합치는 법, 누군가를 지키는 법, 책임감을 가지는 법, 마음을 표현하는 법, 외로움을 이기는 법, 사랑하는 법. 그가 나의 첫 동생이 아니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막내가 태어나고 홀로 여자인 나는 그들로부터 소외되었고, 나이를 먹어가며 서로 마주칠 시간도 없어졌다. 마주쳐도 어색한 안녕으로 지내다가 그가 군대에 가며 우리는 좀 더 애틋한 남매지간이 되었다. 그가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 그래서 혹 다치거나 더 큰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우리를 돈독하게 만들어줬다. 그는 동생이면서 가장 친한 친구였고, 험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가만히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가 죽었다가 살아난 꿈을 꾸고서 적막한 침대 위에서 울었던 것도, 그가 죽을 뻔했을 때 앞뒤 생각 않고 내달린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꿈속에서조차 그가 없는 세상은 반쪽이 잘린 듯 공허했고, 그래서 나는 나의 일부를 잃은 것처럼 슬펐다.
그는 건축 관련 일을 하며 타지에 나가 살고 있다. 아마 계속 그 일을 한다면 거처를 옮겨가며 떠도는 생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 보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해봐야 달에 일주일이 채 안 된다. 나머지 시간 동안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도 나의 꿈이나 고민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서로에게 많은 것을 질문할 만큼 살갑지 않고, 진지한 대화는 낯간지러워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 아마 앞으로도 서로를 잘 모르는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내가 그를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없는 세상을 꿈에서조차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 그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언제까지나 최초이자 최후의 친구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3. 7. 4.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