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대학후배가 말하길 자기가 생각하는 어른의 3요소는 ‘직업, 재테크, 운전’ 이랬다. 직업이 있고, 재테크를 하고, 운전을 할 줄 알면 어른이라는 건데, 그 기준이라면 나는 애새끼라고 했다. 하나도 충족하는 게 없다. 그도 마찬가지랬다. 어른의 3요소를 급하게 생각해 봤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기 때문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진부한 단어들을 골라냈는데, ‘사랑, 존중, 용기’ 이것들이다. 후배는 이 기준이면 본인이 어른이랬다. 본인은 사랑꾼이며 존중꾼이고 용감하다고. 나는 사랑은 그렇다 쳐도 존중을 꾼씩이나 하다니 사기꾼 같다고 했다. 그리고 용기와 용감은 다르다고도. 그는 다시 생각해 보니 상대를 존중하기보다는 인정하는 것이라 했고, 나는 인정이 존중의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하니 그는 시작이 반이랬다. 나는 어쨌거나 내가 내세운 기준에서도 어른은 못 된다. 하나도 제대로 충족되는 게 없다. 어쩌면 이렇게 나이만 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런 어려운 것들만 쏙쏙 골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나는 약자가 된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여태 잘 모르겠고 죽기 전에 알기나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랑을 아는 이들은 어른 같다. 사랑에는 희망적인 색깔만 있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더 자주 절망을 마주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들. 사람과 동식물과 환경과 지구와 세상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사랑의 기운을 점차 퍼뜨려서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사람들. 나에겐 그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으로 보이고, 존경스럽다. 망가진 사람과 동물과 세상은 사랑으로 나아질 것이다. 사랑이 있는 한 어떤 것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고, 사랑이 없다면 어떤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사랑이 모든 것을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을 안 믿는다고 하지만 그건 쑥스러워하는 말이고, 사실은 엄청나게 믿는다. 안 믿는다는 말은 때때로 믿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존중은 무겁고 어렵다. 존중의 시작은 인정이고, 출발은 나부터다. 남을 존중하려면 나부터 존중해야 한다. 나를 제대로 알고 인정해야 존중할 수 있는데,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주변에선 자꾸 방해하고, 방해에는 자꾸 흔들린다. 넌 좀 더 노력해야 해, 넌 좀 더 예뻐져야 해, 넌 살을 좀 더 빼야 해, 좋은 남자를 만나 좋은 가정을 꾸려야 해, 좋은 회사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해. 해야 할 것과 되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도저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할 수 없다. 그러니 타인까지 존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취향을 강요하고, 선택을 강요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너무나 쉽게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타인에게 뭔가를 강요하려는 한 존중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어른이고, 어른이라면 응당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그것을 넘어 타인까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어른이고, 그런 어른과 한 공간에 있으면 분위기도 바뀐다. 나이와 직업과 학벌과 성별과 그 외 모든 것을 초월해 존중이 가능한 어른들은 바라만 봐도 마음이 단단해진다.
자신의 결핍과 약함을 드러내는 사람은 결국 패배하는가. 나는 그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부족함과 잘못을 드러내는 일은 숨기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내가 틀렸고 잘못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인정하는 순간 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그 기분을 이기고, 수치심과 민망함도 이기는 것이 용기다. 나이가 들수록 용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감추고 싶은 게 많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능력 있어 보이고 싶고, 돈도 많아 보이고 싶고, 모든 삶을 가치 있게 꾸려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 근데 우리는 어떠한가. 매일 같이 실수하고 깨지며 비굴함만 늘어간다. 돈은 벌어도, 벌어도 부족한데 물가는 나날이 상승하며 내 한 몸 누울 곳도 갖기 힘들다. 모든 삶을 가치 있게 꾸려나가는 완벽함은 오로지 SNS에만 존재한다. 나의 비참하고 비굴하고 초라한 현실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건 어렵고 무섭다. 어렵고 무서운 일을 기꺼이 해내는 사람들은 어른이다. 그들은 자신의 결핍과 잘못을 제대로 마주하고 인정해서 더 나아가고자 한다. 멈춰 있지 않고 더 나은 내일로, 더 좋은 사람으로. 다음에는 결핍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잘못은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숨기기보다 용기를 택하면 오히려 후련하고 심플해진다. 용기를 낸 어른들이 산뜻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깊이 따지고 보니 어른 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어렵고 복잡한 일에는 손대지 않고 철없이 흐르는 대로만 살아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른 그것도 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이왕이면 후배가 말한 3요소도, 내가 급히 집어든 3요소도 모두 충족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중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것도 쉽지 않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 7. 21.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