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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ul 20. 2023

소개팅 에피소드 3


  인간관계에 있어서 냉정하고 칼 같다는 평을 종종 들었다. 평소엔 오히려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잘 못 내리는 편이지만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칼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다. 미련이 없는 인간관계는 칼 같이 끊어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관계를 빠르게 정리하는 것은 나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도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은가. 여전히 어렵지만, 소개팅에서는 가장 빠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세 번째 소개팅도 상대의 이름과 직장만 알고 만났다. 소개를 주선한 언니의 친구의 남자친구의 친구였는데,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소개팅 상대의 직업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대기업이면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했는데 언니는 ‘돈 잘 버는 남자도 한 번 만나보고 해야….’라며 부추겼다. 나는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은 지적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를 만났다. 처음의 어색함을 견디니 여러 대화주제들이 튀어나왔고 대화가 잘 통했다. 역시 대기업의 인재는 좀 다른 걸까 하는 편견이 자리 잡으려 할 때, 대화의 주제는 여행으로 흘렀는데 어떤 나라들을 가봤냐고 묻기에 내가 여행한 나라들을 쭉 나열했다. 그중에서 중국에 관심을 가지며 중국 어디를 가봤냐고 해서 ‘칭다오’를 다녀왔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농담도 잘하시네요. 진짜 어디 다녀오셨어요?’라고 했다. 나는 잠깐 당황했다. 어떤 부분이 농담이라는 거지?


  “어……. 농담 아니고 칭다오 갔었어요. 맥주축제해서 맥주 마시러….”

  “에이, 칭다오요? 양꼬치엔 칭다오 할 때 그 칭다오?”

  “네! 그 칭다오요! 청도. 거기 맥주축제 기간에 칭다오 생맥주를 팔거든요.”

  “칭다오 맥주 그 칭다오?”


  분위기가 점점 이상했다. 나는 그가 무엇을 못 믿으며 무엇을 묻는지 몰랐고, 그 또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칭다오라는 도시가 있다고요? 맥주 이름이 아니라요?”

  “네…? 칭다오 맥주가 칭다오에서 만들어서 칭다오 맥주인 건데….”

  “근데 카스가 우리나라 맥주지만, 우리나라엔 카스라는 도시가 없잖아요.”


  표정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아마도 내 온 얼굴에는 물음표가 잔뜩 이었을 것이다. 그는 칭다오가 맥주 브랜드의 이름이라고만 생각했고, 중국의 도시 이름인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로 든 카스에는 뭐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이후의 대화에서도 그런 식의 엇갈림은 반복되었다. 최근에 태국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길래 사진에 있는 ‘모닝 글로리(공심채)’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문구점 이름이 아니냐고 했다. 매끄럽던 대화는 그런 순간에 삐끗했고, 그럴 때마다 그와의 연속된 만남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초밥을 먹으러 갔는데 하필이면 사랑니를 뺀 지 얼마 안 돼서 큰 초밥을 씹기가 힘들었다. 원래도 느린 먹는 속도가 더 느려졌는데, 그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먹었다. 거의 씹지 않고 삼켜서 먹는다기 보다는 해치우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반도 못 먹었을 때 그는 식사를 끝내고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편이어도 처음 보는 사람이 먹는 걸 계속 지켜보니 부담스러워 체할 것 같았다. 새우나 문어를 남겼길래 못 드시냐고 물으니 식감이 별로라서 안 먹는다고 했다. 미역의 식감도 싫어해서 생일날 미역국도 안 먹는다고 했다. 그럼 생일날 뭘 드시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답은 기억이 안 난다. 역시 세상에 이런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만 있다.


  나는 그와의 다음을 고민했지만 그는 이미 만나기로 결정된 듯, 본인이 사는 곳에 맛있는 떡볶이집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랑니 발치 때문에 당분간 매운 건 못 먹겠다며 만남을 보류했는데 계속 술을 마시자기에 정중히 거절의사를 표현했다. 주선자 언니는 한 번 더 만나보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으로 족하다고 했다. 그가 소개팅 상대로 완전히 별로는 아니었다.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었고 매너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어긋남으로 그와의 다음 대화가, 다음 식사가 기대되지 않았다. 아닌 느낌이 드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섣부른 판단으로 날려버린 좋은 인연들이 있겠지만,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돌아보니 냉정하고 빠르게 정리한 인간관계 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끌어온 인간관계에서 훨씬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럼 또다시 이렇게 묻게 된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빠르게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나쁜가.           

                                                           


                                                                                                                        2023. 7. 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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