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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an 16. 2024

나의 첫 요가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일 무렵, 갑자기 다이어트를 하고 싶었다. 사실 여대생들에게 다이어트란 습관 혹은 취미처럼 따라 붙는 것이었고, 먹는 걸 좋아했던 나는 식단 보다는 적당한 운동을 찾기로 했다. 엄마랑 시내를 걷다가 눈에 보이던 요가원에 무작정 들어갔다. 사실 요가를 하고 싶다는 염원이나 그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고, 헬스는 싫은데 그럼 요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대개의 요가원이 그렇듯 차분하고 훈훈한 분위기의 요가원 이었는데, 원장님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깨까지 오는 웨이브 진 단발머리의 남자 원장님은 생활 한복 같은 옷을 입고 엄마와 나에게 차를 권했다. 말투는 부드러우면서도 다정했고, 자세는 곧았다. 양반다리를 그렇게 정갈하게 한 사람은 처음 봤다. 그 날 바로 결제를 하고 나왔다. 

  

  학기 중에는 주로 저녁타임 수업을 들었다. 요가원에는 원장님 외에 여자 강사님이 한 분 더 계셨는데 엄청난 근육으로 단련된 분이셨다. 원장님의 수업은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여자 선생님의 수업 위주로 골라 들었다. 결제만 하면 일주일에 몇 번을 몇 시간씩 듣던 상관없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많이 하면 살이 빨리 빠질 거라 생각해서 매일 갔다. 저녁 타임의 회원들은 주로 주부들이었다. 내 또래는 한두 명 보일까 말까 했다. 나름대로 운동 신경과 유연성에 자신 있었는데 처음 하는 요가는 쉽지 않았다. 유연하다고만 될 일도 아니고 힘만 쓴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너무나 평온하게 하는 자세를(심지어 설명도 하면서) 나는 가만히 버티고 있기도 힘들었다. 요가를 몇 년씩 들어온 것 같은 주부 회원님들은 버거워하는 내 옆에서 보란 듯이 척척 동작을 해 나갔다. 젊은 자존심이 팍팍 죽었다. 처음 얼마간은 오기와 패기로 어떻게든 모든 동작들을 하기 위해 용 썼다. 살이 빠지기는커녕 근육통으로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으로 매일 수업에 참여하다가 방학이 되고부터는 하루에 3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아침에 1시간, 저녁에 2시간씩 요가에 목메는 사람마냥 광적으로 집착했다. 많이 들으면 요가가 빨리 늘 거라 생각했다. 한 번은 아침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려고 애쓰다가 토할 것 같아서 관두고 조용히 밖으로 나가자 원장님이 다른 방으로 데려 가더니 매트 위에 누워서 쉬라고 했다. 누워서 심호흡 하다보면 괜찮아질 것이라 했고, 실제로 그랬다. 어려운 동작을 해내기 위해 숨을 참다가 어지러움이 온 것이었다. 원장님은 요가를 그렇게 힘으로만 몰아붙이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곤 내게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원장님의 눈은 정확했다. 나는 욕심 많은 20대였다. 대체로 모든 일에, 특히 내가 자신 있다고 여긴 일에서 잘 해내고 싶었다. 요가에서는 모든 동작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 그게 나의 욕심이었다. 조용한 방 매트 위에 대자로 누워 크게 숨 쉬면서 요가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살을 빼기 위한 수단이 아닌, 오기로 해내는 과제가 아닌, 내 몸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원장님의 말대로 요가는 운동의 영역이 아닌 수련의 영역이었다. 


  살은 별로 빠지지 않았다. 방학 기간 동안 하루에 3시간씩 했는데도 그만큼 먹어서인지 딱히 체중 감량의 효과는 없었다. 다만 나는 요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내 몸이 어떻게 쓰이는지, 어떤 부분이 약하고 부족한지 잘 알게 되었다. 요가를 수련하는 시간은 내 몸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너무나 쉽게 가능할 것 같았던 자세가 안 될 때,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가 문제야? 어디가 힘든 거야? 그렇게 말을 걸면 어딘가에서 답을 보내왔다. 골반이거나 척추이거나 어깨 근육 같은 것들이. 불가능할 것 같은 자세를 단번에 성공할 때도 말을 걸었다. 너 생각보다 강하네? 이게 가능해?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내 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유연성에 비해 근력이 부족하고 순발력은 좋으나 지구력이 떨어진다는 것, 긴장도가 높아 몸 곳곳에 뭉친 근육이 많다는 것, 상체는 잘 쓰지만 하체는 잘 쓰지 못한다는 것, 목부터 허리로 이어지는 구간의 자세가 구부정하다는 것. 그러면서 점차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머리로 물구나무를 서고, 다리를 일자로 찢어도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일 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요가원을 다녔다. 근육이 울룩불룩하고 명랑한 선생님과 차분하고 고상하지만 절대 봐주지 않는 원장님에게 요가를 배웠다. 요가원이 문을 닫게 되면서 나의 첫 요가도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첫 요가에 대한 기억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만약 그 때 아무 생각 없이 요가원 문을 열지 않았다면, 고운 자태의 원장님과 근육 빵빵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요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지도 모른다. 지금도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할 때면 간혹 원장님이나 선생님을 떠올린다. 내가 계속 요가를 좋아할 수 있게 해준 선생님들이 잘 지내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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