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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an 18. 2024

중력과 함께하는 요가


  첫 요가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적당한 요가원을 또 찾아 헤맸다. 마침 새로 오픈한 요가원이 있었는데 그냥 요가가 아닌 ‘플라잉 요가’였다. 천장에 달린 해먹을 이용하는 요가였는데 땅에서 하는 요가보다 멋져 보였다. 오픈 이벤트로 가격 할인이 있었지만 플라잉 요가는 일주일에 두 번 밖에 못 듣는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머지는 땅에서 하는 요가 거나 맨몸 필라테스 수업이었다. 어쨌거나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해먹은 어릴 때부터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어떤 영화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인물이 숲 속에 텐트를 치고 나무 사이에 느슨하게 매어둔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모습을 봤었다. 어떤 영화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여유로움의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서 나도 꼭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첫 플라잉 요가 수업에서 만난 해먹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누워서 책을 읽기는커녕 올라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어려운 매력이 있달까. 됐다 싶어서 힘주어 오르면 저 멀리로 도망가고, 그렇다고 힘을 너무 안 주면 멋대로 흔들린다. 적당한 힘의 균형이 매우 중요했다. 배에 해먹을 걸치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다리에 해먹을 감아 거꾸로 매달리는 자세가 제일 처음 배운 자세였다. 어디 매달린 개구리 같아서 거울로 확인하기에 상당히 우스웠는데 웃을 수 없었다. 너무 심하게 흔들리면 어지럽기 때문에 배와 팔에 힘을 줘서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플라잉 요가의 세계는 쉽지 않았다. 다리에 해먹 천을 돌돌 감아 공중에서 다리를 뻗으면 천이 살을 파고드는 아픔이 느껴졌다. 돈을 내고 이런 고문을 당하다니. 그럼에도 쉽게 관둘 수 없는 이유는 공중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면 위험해서 선생님의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고통을 참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땅에서 고작 몇 센티 떨어져 있는 것일 뿐인데 내 몸이 정말 무겁게 느껴졌다. 천이 나를 감고 있다고는 하나 팔에 엄청난 힘이 들어갔다. 플라잉 요가를 한 다음날은 내 팔에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던 감각들이 살아났다.


  플라잉 요가의 많은 동작들 중에서 거꾸로 매달리는 자세는 할 때마다 느낌이 이상했다. 가끔 선생님은 해먹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힘을 풀라고 하셨다. 발목에 천이 제대로 걸려만 있다면 위험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힘을 빼면 내 뼈들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허리부터 목까지 뼈가 펴지는 것 같으면서 머리의 무게가 느껴졌다. 할 때마다 내 머리가 정말 무겁구나, 생각했고 그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목과 어깨가 안쓰러웠다. 스트레칭을 자주 한다고 하는데도 목과 어깨가 항상 무겁고 뭉쳐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 내 몸에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몸으로도 용케 잘 버티고 살고 있구나, 대견해지기도 했다.      


  모든 요가의 마지막은 사바 아사나로 끝난다. 송장 자세, 시체 자세라고 불리는 사바 아사나는 몸의 모든 부위에서 힘을 빼고 완전한 이완과 휴식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제일 좋아하는 자세다. 매트 위에서 하는 요가의 사바 아사나는 다리 사이를 넓게 벌리고 팔도 겨드랑이에서 살짝 떼어내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도록 하고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다. 의식적으로 어깨나 엉덩이, 허리 같은 곳에 들어간 힘을 빼려고 노력한다. 선생님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원체 생각이 많아서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생각’을 하며 호흡하다 보면 깜빡 얕은 잠에 들기도 한다. 플라잉 요가의 사바 아사나는 매트 대신 해먹 안에서 이루어진다. 해먹 안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다리를 뻗는다. 팔을 밖으로 내놔도 되고, 안으로 집어넣어도 된다. 해먹을 쫙 펼쳐서 몸 위로 덮어 시야를 차단해도 된다. 해먹 안에서 들썩거리며 움직이다 보면 가장 편한 자세를 찾게 되는데 이때 가장 환호성을 지르는 건 나의 척추다. 가끔 매트 위에서 사바 아사나를 할 때 등에서 꼬리뼈로 이어지는 구간의 불편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허리가 안 좋기 때문인데, 해먹 안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공중에서 중력에 의해 척추가 당겨지며 너무나 편안해진다. 누에고치 안에서 변태를 기다리는 애벌레처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힘이 빠진다. 중력이 작용하는 별에 살고 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플라잉 요가는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든 일이 중력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중력이 있기 때문에 천 쪼가리 하나에 내 몸을 내맡길 수 있었고, 중력이 있기 때문에 척추의 편안함도 느낄 수 있었다.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느끼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평소에 자각하지 못하던 감각을 직접 느껴보는 체험은 남다르다. 공중에 떠서도 두렵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발붙이고 살아갈 땅이 바로 내 밑에 있고 나는 언제고 땅을 밟을 것이기에 마음 놓고 매달리고 눕고 거꾸로 쏟아질 수 있었다. 공중에 떠서 땅을 생각하는 감각은 이질적이고 소중했다.



  플라잉 요가는 가격이 너무 비쌌고, 수업도 내 마음대로 들을 수 없어서 3개월쯤 하고 그만뒀다. 그리고 그 요가원도 얼마 안 가 사라졌다. 요즘도 가끔 그립다. 해먹 안에 누워 있을 때 중력이 내 척추를 당겨주는 느낌. 언젠가는 나만의 해먹을 가지고 그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되리라는 로망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 그나저나 내가 다녔던 곳마다 족족 문을 닫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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