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건강한 편이지만, 환절기가 되면 마치 새로운 계절을 환영이라도 하듯 감기를 크게 앓는 편이다. 내가 유일하게 입맛이 조금 잃는(아예 없지는 않다) 시기이기도 하다. 보통 아프면 죽을 사 먹거나 하지만, 나는 죽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다른 메뉴가 생각난다. 반찬은 아무래도 좋은데, 이상하게 배추된장국이 먹고 싶어 진다. 원래 취향이라면 국보다 찌개가 좋고, 심지어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도 아니다. (엄마는 경북 사람이라 배춧국에 주로 들깨가루를 넣고, 나는 들깨가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 먹으면서 자라지도 않았고, 평소에 자주 해먹지도 않는 배추된장국이 몸만 아프면 미치도록 먹고 싶다. 그걸 먹어야만 이 감기가 다 나을 것 같은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힌다.
일단 배추된장국은 된장찌개에 비해서 재료도 간단하다. 된장, 배추만 있으면 된다. 알배기 배추 하나를 사서 잎을 똑똑 뜯어 잘 씻고 한입에 들어갈 크기도 썰어준다. 육수를 내면 좋지만, 1인 가구에겐 그럴 재료도 없거니와 아플 땐 사치스러운 일이라 코인육수를 쓴다. 멸치, 디포리 등이 들어간 해물 육수를 쓰면 좋다. 육수에 된장을 풀어준다. 간은 국간장으로 맞추고 색이 너무 진해지는 게 싫다면 소금을 쓰면 된다. 된장으로만 간을 하면 된장 비율이 너무 많아져 찌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약간 멀멀하게 풀어주는 게 포인트다.
나는 엄마가 준 된장을 쓰는데, 엄마가 어디선가 집 된장을 조금 얻어 와서 메주콩을 섞어 틔운 된장이다. 그래서 시판 된장보다 덜 달고 조금 더 짜다. 그러니 사실 계량은 큰 의미가 없다. 쓰는 된장마다 맛이 다르기 때문에 간을 맞출 자신이 없다면 처음에 조금씩 넣어 맞춰 나가면 된다.
만약 팽이버섯이나 두부, 파가 있다면 좀 넣어줘도 좋지만 나는 대체로 생략한다. 배추된장국의 매력은 재료의 소박함에서 나온다. 배추의 빳빳한 줄기 부분이 흐들흐들해질 정도로 끓기만 하면 끝난다.
너무 간단히 완성된 배추된장국 한 숟갈을 목으로 넘기면, 따뜻한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진다. 달달하고 흐물거리지만 씹는 맛은 살아있는 배추는 된장을 머금어 더 맛있어졌다.
어째서 별로 먹지도 않는 음식이 아프기만 하면 생각나는 걸까. 어쩌면 내가 모르는 지난날들의 파편 중에서 배추된장국을 먹고 아팠던 몸이 나은 기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다른 재료가 아니어도, 특별한 맛이 아니어도 나를 낫게 하는 힘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플 때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는 것, 그 음식이 정말 나를 나아지게 한다는 게 누군가 부려놓은 마법처럼 느껴진다. 어쨌거나 그 마법의 힘으로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이런 기억들은 또 계속 쌓여 아프면 어김없이 배추된장국 생각이 나겠지.
팁) 1인 가구에게 ‘코인육수’는 거의 필수템이다. 여러 브랜드를 써봤는데 사실 엄청난 차이는 못 느껴서 그냥 그때 할인하는 제품을 산다. 개인적으로는 ‘멸치’가 들어간 코인육수가 제일 활용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