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재료에 호불호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가지만큼 우리나라에서 하대(?)받는 식재료가 있을까 싶다. 보통은 흐물거리는 식감이 별로다(혹은 스펀지 같다), 특별한 맛이 없다 등의 평을 받는다. 사실 흐물거리는 식감에 대해서는 딱히 반박할 수 없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단한 식감은 아니기 때문에 열을 가하면 어느 정도 흐물거릴 수밖에 없다.(그게 매력인데...)
특별한 맛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반박을 하고 싶은데, 제철의 가지는 정말 달큰한 즙을 잔뜩 품고 있다. 대단한 맛은 아니겠지만 가지만의 은은한 단맛이 있는데...
맛에 대한 불호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거니까. 그런데 얼마 전, 가지를 싫어하는 충격적 이유를 들었다. “보라색이라서.”
말하자면 보라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다. 그래서 난 가지가 띄는 보라색을 참 좋아한다. 쨍하면서도 차분한 매끈거리는 보라색. 어떻게 자연에서 저런 빛깔을 낼 수 있을까, 매번 감탄하는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싫은 포인트가 되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
내가 얼마나 가지를 좋아하는지는, 직장 동료들의 이런 말들로 설명이 된다.
“혹시... 집에 가지 키워요? 밭이 있어요?”
“오늘 메뉴 뭐에요? 설마 또 가지?”
“(도시락을 보며) 그거 뭐에요? 가지? (가지 아니다)”
이렇게 나는 공공연한 ‘가지녀’로 통한다. 그런 만큼 가지 정말 맛있다고, 한번 먹어보라고 소위 ‘가지라이팅’을 하지만 그건 잘 안 통한다. 그래서 여기서라도 다시 영업을 해보고 싶다. 가지 정말 맛있는데... 싫어하세요?
- 가지 볶음
가지는 기름과 열을 만나면 무조건 맛있어진다. 가장 간단한 건 역시 볶음이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자른 가지를 넣고 볶으면 끝이다. 이때 가지는 조금 큼직하게 썰어줘야 모양을 유지하면서 너무 흐물거리지 않고 즙을 머금을 수 있다.
나처럼 가지의 은은한 단맛을 즐긴다면 소금간만 살짝 해서 가지 본연의 맛을 즐기는 걸 추천한다. 그게 아니라면 양념의 힘이 필요하다. 간장과 굴소스 조합은 실패가 없다. 이렇게만 해도 중국집 요리로 나올법한 맛이 완성되지만, 두반장을 한 스푼 곁들이면 끝장이다. 이렇게 양념을 한 가지 볶음은 덮밥처럼 밥과 함께 먹을 때 빛을 발한다. 반숙 달걀 프라이 한 장을 얹어주면 중국집 덮밥 요리가 부럽지 않다.
팁) 처음에 가지가 기름을 전부 흡수해서 기름이 부족한가 싶어도 계속 볶다보면 다시 기름을 뱉어내기 때문에 기름을 계속 추가할 필요는 없다.
- 가지 튀김
뭐니 뭐니 해도 가지는 튀김이다. 고온의 기름에 바싹 튀겨낸 가지는 환상적인 맛이다. 튀김옷을 바삭하게 한입 깨물면 입안에 쫙 퍼지는 가지의 달큰한 채즙... (침 고인다) 바삭한 튀김과 흐물거리는 가지 특유의 식감의 반전이 계속 손이 가게 만든다.
집에서 튀김이라고 하면 너무 번거롭게 생각되지만 이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우선 완전 바삭한 튀김을 만들고 싶다면 전분을 쓰면 된다. 가지에 곧바로 전분 가루를 묻혀 튀겨내면 된다. 나는 아직 전분 튀김이 익숙하지 않아 튀김가루를 선호한다. 튀김가루에 차가운 물을 섞어 주르륵 흐르는 정도의 반죽 농도를 만든다. 가지를 퐁당 담궈 옷을 입혀준 뒤 바글바글 끓는 기름에 튀기면 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넉넉히 붓고 굽듯이 튀기면, 남는 기름도 없고 1인 가구도 충분히 튀김을 즐길 수 있다.
팁) 튀김 반죽을 만들 때, 바삭하게 하기 위해 얼음을 넣어도 좋다. (녹으면 농도가 달라지는 건 주의) 튀김 가루에는 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다.
- 가지 전
엄마가 자주 해주던 요리다. 특별할 건 없다. 부침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납작하게 썬 가지에 묻히고 구우면 된다. 엄청 특별한 맛이 아닌데 자꾸 땡긴다. 엄마가 저녁에 한 판 가득 만들어서 랩을 씌워 식탁에 두면, 왔다 갔다 하면서 한 개씩 집어먹어 결국은 빈 접시가 된다. 식어도 맛있다.
- 가지 파스타
오일 파스타에 가지만 더해줘도 그것대로 담백한 맛이 나서 좋다. 나는 두반장을 써서 중국풍의 가지 파스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올리브유에 마늘향을 입히고, 두께감 있게 썬 가지를 볶은 후 간장과 굴소스 약간으로 간을 한다. 마지막에 두반장 소스를 넣고, 파스타 면을 같이 섞어주면 된다. 그릇에 파스타를 담아낸 후, 통후추를 그라인더로 갈아주고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갈아주면 동서양의 완벽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가지는 토마토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구운 가지를 라자냐 면 대신 사용해서 가지 라자냐를 만들 수도 있다. 납작하게 썬 가지에 소금, 후추 간을 해서 굽고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번갈아 얹어 구워주면 끝이다. 오븐이 없는 1인 가구라면 전자레인지로 치즈만 녹여줘도 된다.
사실 가지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데, 너무 갑자기 다가가면 놀랄 수 있으니까 이쯤 한다. 가지는 어디에 들어가도 특별하게 튀는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맛과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보라색이라는 강렬한 컬러를 가지고도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아이라니, 이래도 가지가 싫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