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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7. 2024

잘 말아줘, 잘 눌러줘~

얼마 전, 분식집에 갔다가 놀랄 일이 있었다. 김밥의 가격이 9천 원이었다. 밥이 들어가지 않은 키토 프리미엄 김밥이랬다. 그게 더 놀라웠다. 밥도 없는데 9천 원?


이런 말을 하면 나이가 가늠되겠지만, 나는 천 원 한 장으로 김밥을 사 먹던 시절을 살았다. 김밥천국에서 기본 김밥 하나를 주문하면 천 원이었다. 그 가격이 1500원으로 올랐을 때 느꼈던 배신감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풍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에게 김밥은 추억의 음식이자, 설렘을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엄마는 집에서 김밥을 잘 싸주셨는데, 재료가 부족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단무지, 당근, 햄, 어묵, 시금치, 우엉 등을 전부 준비했고 거기에 참치나 치즈, 김치, 깻잎 등이 추가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김밥이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갑자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평소에 그렇게 김밥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엄마가 알차게 말아준 김밥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김밥을 말려면 김밥 김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재료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포기한 김밥은 한동안 내 머리와 뱃속에 아른거렸고, 사 먹자니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어 큰맘 먹고 재료들을 샀다. 김밥 김과 단무지, 당근과 햄. 우엉은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생략했고, 달걀은 늘 상비해 두는 품목이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으니까 어깨너머로 늘 봐왔던 대로 김을 깔고 밥을 펼치면...? 펼쳐져야 하는데 얘가 왜 이렇게 떡이 돼서, 그것보다도 김이 왜 이렇게 쭈그러지지? 밥을 펴는 건 김밥의 시작인데, 시작부터 막혔다. 밥이 너무 뜨거우면 김이 쭈그러들기 때문에, 엄마는 늘 김밥을 말 때 제일 먼저 밥에 간을 해서 식혀놓는다는 걸 몰랐다. 난 정말 모르는 게 많으면서 먹기만 잘 먹었네.      


그 뒤로 나의 김밥에 대한 열정은 더 타올랐다. 완벽하게 예쁘고 맛있는 김밥을 만들고 싶었다. 유튜브에 ‘김밥 잘 마는 법’을 검색하면서 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김밥을 잘 만다고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부심이 생겨 본가에 가서 엄마한테 말아주기도 했다. 내가 만드는 김밥은 엄마의 김밥처럼 모든 재료를 다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 조금 이상한 재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대체로 맛있다. 

     

김밥의 매력은 거기서 온다. 온갖 재료들이 김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웬만큼 잘 어우러진다는 것. 어떤 재료도 김과 밥이 편안하게 안아주는 느낌이다. 가끔 포용력이 필요해지면, 나는 김밥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재료도, 아니 재료가 그다지 없어도 일단 동그랗게 말리면 그런대로 맛을 내는 김밥. 나에게도 딱 그만큼의 포용력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는 냉장고 속 재료를 긁어모아 김밥을 만다.           




팁) 밥을 펼칠 때 손끝에 물을 묻히면 잘 펴진다. 마지막에 김밥을 접착시킬 때도 물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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