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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7. 2024

오븐도 없이 베이킹하는 여자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요리는 물론이고, 베이킹에도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 집에는 엄마의 요리책 컬렉션이 있었는데, 동생과 매일같이 그 책을 꺼내 보면서 이건 어떤 맛일지? 저건 어떤 맛일지? 상상하며 놀았다. 하도 많이 봐서 레시피도 외울 정도였는데, 정작 집에는 오븐도 뭣도 없었기 때문에 시도하진 못했다. 


나의 오랜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건,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부터였다. 커피와 함께 팔만한 디저트 메뉴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만들어볼 수 있게 되었는데,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즐거웠다. 손을 하도 많이 써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퉁퉁 부어 주먹도 안 쥐어지는 지경이었지만, 레시피를 뒤져보며 오늘은 어떤 디저트를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 시기부터 집에서도 조금씩 베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본가에 오븐은 없었지만, 오븐 겸용 에어프라이어가 있어 나는 늘 유튜브에 '에어프라이어 베이킹'을 검색했다. 엄마는 내 손목을 걱정하며 그만 좀 하라고 했지만, 막상 결과물이 나오면 제일 맛있게 먹는 사람이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에어프라이어를 사긴 했는데, 공간이 없어 바스켓형을 샀기 때문에 베이킹은 내게서 좀 멀어졌다. 오븐 겸용이 아닌 에어프라이어는 위쪽에만 열선이 있기 때문에 아래쪽은 열이 가해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 쿠키를 구우려면 웬만큼 윗면을 구운 다음 하나씩 뒤집어 다시 아랫면을 구워야 된다는 소리다. 

그 과정들이 너무 귀찮고 결과물도 별로였기 때문에 한동안 홈 베이킹을 잊고 살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어느 날, 쿠키가 미친 듯이 굽고 싶었다. 그냥 세상이 모두를 축복하는 아름다운 날이니까, 나도 내 마음을 정성스럽게 담은 쿠키를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검색하다가 마침 재료도 다 있어서 캄캄한 밤에 쿠키와 스콘 반죽을 시작했다. 5평 남짓한 좁은 방안에 달달한 냄새가 가득 찼다. 에어프라이어를 계속 돌리니까 창문을 열고 있어도 방이 후끈했다. 에어프라이어 한 번에 들어가는 쿠키는 많아봤자 5개였고, 뒤집어 굽는 시간까지 더해지니 반죽을 전부 굽는 데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렸다. 그렇게 나온 쿠키의 예쁜 크랙을 보는 순간, 행복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좁은 원룸에서, 이 작은 에어프라이어로, 이 달밤에 쿠키를 굽는 내가 너무 웃겼다. 어떻게든 만들어 내고야 마는 내가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나는 종종 쿠키나 스콘, 머핀 등을 구워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맛이 있고, 없고는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베이킹은 요리보다 훨씬 공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정말 정성을 다하고 싶은 순간에만 베이킹을 해서 선물했다. 그 마음까지 친구들이 알아주는지도 별로 안 중요했다. 내 마음이 그랬고, 그걸 표현했으면 그걸로 됐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할 때가 있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들도 있다. 그럼 나는 어두운 밤에 베이킹을 한다. 모두가 잘 준비를 하는 시간에 나는 설탕과 버터와 밀가루를 버무려 뭔가를 만들어낸다. 그것들이 구워지며 방안에 달콤한 냄새가 가득 차면, 살기 힘든 삶도 어쩐지 견딜만하게 느껴졌다. 에어프라이어 속에 반죽을 집어넣고,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뽀드득하게 하고 나면 마음속에 앙금도 조금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베이킹을 해서 선물하는 것도 그런 마음이었다. 나에게 응원이 되었던 달콤함을 누군가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 그게 조금이라도 닿았다면, 그래서 그걸 베어 무는 순간만큼은 달콤함에 기분이 좋았다면, 내 달밤의 베이킹이 헛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게 내가 오븐도 없이 꾸역꾸역 베이킹을 해 나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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