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무 Oct 27. 2024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응원

"어떻게 매번 그렇게 도시락을 싸와요? 진짜 대단하다~"

"매일 집에 가서 저녁에 만드시는 거예요?"


점심시간, 도시락을 펼치면 꼭 한 번은 듣는 말이다. 뭐, 내가 생각해도 도시락을 꽤나 야무지게 싸다니는 편이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도시락을 싸면 쌀수록 더 진심이 됐다. 

긴 백수 시절을 마치고 들어간 회사는 강남 중에서도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다. 점심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 없이 출근했는데, 직원 대부분이 회의실에서 간단히 도시락을 먹는 분위기였다. 집에서 싸 온다기보다는, 편의점 도시락이나 냉동 볶음밥 등을 데워먹는 식이었다. 


냉동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편의점 음식에도 크게 흥미가 없어 입사 초기에는 나가서 밥을 사 먹었다. 강남의 물가는 실로 놀라웠는데, 만 원은 기본으로 넘으면서 한 끼에 16000원씩 쓰는 것도 예사였다. 취직하기 전에 늘 집밥을 먹었던 탓에 갑작스러운 지출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집밥에 길들여진 몸은 바깥 음식에 더 놀랐다. 딱 일주일, 밖에서 음식을 사 먹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붓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들은 너무 달거나 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도시락통을 샀다. (도시락통을 찾는 여정도 험난했는데,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처음엔 그저 식비를 아끼고 바깥 음식을 덜 먹자는 취지였다. 여러 가지 반찬을 담기는 좀 부담스러워 한 그릇 요리가 제격이었기에 뭔가를 볶아 덮밥처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공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이미 8시. 저녁을 만들어 먹으면 9시였고, 그때부터 도시락을 만들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10시를 넘어갔다. 도시락 만드는 일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투자했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니까 그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회사를 다니는 게 힘들어질수록 나는 도시락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어떤 일들은 대체로 이해할 수 없었고, 어떤 사람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야근이 늘어나면서도 도시락만은 놓지 않았는데, 그것만이 내 하루에서 의미 있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의미 없는 일에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나를 위한 밥을 만드는 것에만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야근을 하고 10시에 집에 오더라도, 새벽에 자는 한이 있어도 도시락을 꼭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그건 또 지난한 하루를 견디고 있을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미리 보내는 응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밤을 지나서 전해진 응원은 내일의 나에게 가닿아, 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은 나는 또 그럭저럭 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만약 그때의 나에게 도시락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비록 체력적으로는 지치는 날들이었지만 도시락을 먹을 때만큼은 정신적으로 충만해짐을 느꼈다. 내가 매일 나를 위해 요리하는 것, 그것을 정성스럽게 담아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일. 그건 괴로운 직장생활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고, 내가 나를 먹이는 데서 나오는 힘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만든다. 내일의 나에게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이 도시락을 먹는 순간만큼은 힘을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