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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리더

헨더슨과 트럼프

COVID 19로 인해 중단되었던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지난주 몇달만에 재개되었다. 비록 경기장에 관중들이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몇 달간의 Lockdown 끝에 축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축구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중계권과 그것을 둘러싼 비즈니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단지 비즈니스일 뿐이라도, 이 비즈니스를 지탱하는 것은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 덕분이다. 그 열광이 곧 축구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 공놀이에 열광이 더해져 다양한 의미값을 획득한 끝에, 축구는 싸움이고, 예술이며, 삶의 철학이 되었다.


1894년 이래로 236번째 경기를 갖는, 리버풀과 에버튼의 경기 역시 마찬가지다. 리버풀은 30년만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라는 금자탑에 다가서는 중이고, 그들의 영원한 지역 라이벌 에버튼은 리버풀의 우승행진을 함께 축하할 마음은 없었다. 머지사이드 더비가 늘 그렇듯 특별하고 치열한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오늘의 더비는 조금 더 특별했다.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유니폼에는 이름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BLACK LIVES MATTER"가 적혀 있었고, 선수단은 경기에 앞서 묵념을 했다. 경기 전 리버풀의 감독 클롭 역시 비대면으로 이뤄진 기자단 인터뷰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언급한 바 있다.  

묵념은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 희생자와 방역에 힘쓰고 있는 영국 보건 당국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은 프리미어리그 각 팀의 주장들을 모아, 영국 보건 당국인 NHS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운동을 펼쳤다. 이미 4,000,000파운드가 NHS에 전달되었다. 더비의 치열함을 앞두고 침묵하는 선수들 속에서 그 팽팽한 메세지가 전세계로 전달되었다. 관중은 없었지만, 각자의 집에서 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조용히 열광할 수 있었다. 축구는 본질적으로 열광의 문법을 가지는 탓에, 각종 정치적 선전장이 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FIFA는 경기장에서의 정치적 발언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것만큼은 예외다. 앞서 언급한 클롭 감독의 경기 전 인터뷰를 조금 인용해보자. "축구가 인생에서 어떤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평등이라는 것이다." 유례없는 상황 속에서도, 축구는 싸움이고, 예술이며, 삶의 철학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대서양 건너편의 나라에서는 이 장엄한 장면의 정반대에 해당하는 모습을 단 한 명이 펼쳐내고 있었다. 21세기 최악의 인간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다. 이를 두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도덕적 차이를 논할 수야 없겠지만, 선더랜드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난 조던 헨더슨과 대자본가 WASP 도널드 트럼프 간의 도덕적 차이쯤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는 일찍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앞에서 "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라고 지껄인 바 있다. 대번에 총격을 운운하는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경악스럽다. 하지만 "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가 미국 마이애미 경찰서장이 1967년 흑인 시위 때 폭력 보복을 공언하며 했던 말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당장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그는 재선을 위해 누군가를 적으로 돌려기에 급급하다. 그는 어제 재선을 위한 지지 유세를 진행하며 "Kungflu"라고 떠들며 지지자들을 환호케 한 바있다. 중국권법인 쿵푸와 감기를 뜻하는 Flu를 합쳐, 중국이 병의 발원지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해서 울화통이 터져 죽은 게 아닐까 싶은 조선인들도 있긴 하다.) 아무렇지 않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공석에서 늘어놓는 그에게, 일본,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의 국민들이 겪는 인종차별을 상기시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이 두 장면은 무엇인가 영영 바뀌어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치가 제시하던 도덕적인 지도자의 모습과 철학을 스포츠가 보여주는 반면, 정치는 철학을 잃은 채로 베팅과 결과만 남아 스포츠의 가장 한심한 측면을 전시하고 있다. 누군가 세상이라는 모터에 나사를 풀어놓은 것은 아닌가. 거세게 회전하던 모터는 조금 후면 산산조각날 것만 같다. 증오와 적대의 날개가 튕겨져 나간 곳에서 '나는 안전할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세상은 점점 더 말걸기 두려운 공간이 되어간다. 그렇게 고립된 개인만이 늘어가는 시대, 별이 사라지고 도덕이 침몰한 시대, 연대와 우정의 낱말이 포승줄에 묶여 결박된 시대. 익숙한 무기력함이 발끝에서 기어오른다.


(하필이면 그런 세상에서 엔지니어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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