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d by the poor, stolen by the rich
ESL은 결국 삼일천하로 끝이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축구계는 한동안 이번 정변으로 인해 지속적인 불판이 일어날 듯 싶다. 이번 계획을 주도했으며 슈퍼리그의 회장이 될 예정이었던 페레스의 인터뷰는 대단히 시사적이다. 그는 “이러다 우리는 다 같이 죽는다!”는 위기설을 설파하며 ESL 개최의 당위를 역설했다. JP 모건이 자금을 대고 미국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구단들이 참여를 밝힌 과정속에서, 데얀 로브렌의 말마따나 “football”은 “soccer”가 되었다. 이는 곧, “culture”가 가면을 벗고 “business”라는 본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축구인들은 반발했다. 돈과 탐욕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 대부분은 이것은 축구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들만의 리그가 단순한 비유가 아닌 제도화되는 순간, 축구가 가지는 드라마틱함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년 전에 레스터 시티의 동화가 펼쳐졌던 것을 모두가 기억한다. 이제는 영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인 제이미 바디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그 응원가를 모두가 따라 부른다. 독일의 대형 클럽들(이는 50+1룰의 영향으로 보인다. 해당 규정은 구단과 팬이 구단 지분의 절반 이상인 51%를 보유함으로써 외국 자본이나 기업 등이 대주주가 되어 팀의 운영을 좌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은 일찌감치 선을 그었고, 시민 구단인 바르셀로나 역시 여론을 듣고 탈퇴를 선언했다. 급격히 악화된 여론 속에 EPL의 여섯 구단이 모두 탈퇴를 선언하며, ESL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공은 둥글다.”는 축구계의 격언이 있다. 공이 둥글기에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는 것처럼, 승부는 붙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각잡힌 자본의 노골적인 침투 앞에서, “공은 둥글다”라는 격언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승패를 넘어 축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형태라 해도 좋다. 축구는 사람들에게 라이벌과의 세련된 전쟁터이자, 맥주가 함께하는 휴식 공간이며, 서포터들이 함께 어울리는 교회이다. 경기가 끝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사람들이, 주말만 되면 축구 앞에 둥글게 모인다. 이것은 자부심이며 전통이다. 매년 광고비가 얼마였다는 것을 떠들어대는 미식 축구에 익숙한 자본가들에게, 이러한 전유럽에 걸친 반발은 예상치 못한 광경일테다. 혹자는 이미 유럽 축구 역시 거대 자본에 종속되어 움직인다고 하겠지만, 언제나 ‘눈가리고 아웅’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자본이 노동자 계층의 자부심을 건드린 셈이 되었다.
당분간 ESL에 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겠지만, 언제고 미식 자본주의는 유럽 축구를 잠식하기 위한 도전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때도 노동자 계층의 자부심과 전통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 축구계는 자신들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선언했다. 여전히 공은 둥글다.
P.S. ESL 참가구단의 선수들은 UEFA 및 FIFA 주관 대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선언이 나오자, 이 시대의 진정한 마초 즐라탄은 페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스웨덴을 위해 뛸 것이다. 지난달 국가 대표팀 경기를 뛰고 왔는데 어떤 마드리드 살고 축구 한번도 안해본 놈(페레스)이 우리를 유로랑 월드컵에서 못 뛰게 하려하다니. 미친 짓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나는 국가를 위해 뛸 것이고, 이것이 지속될 수 있는 다른 클럽을 알아보면 그만이다. 스웨덴의 말뫼로 가면 될 것 같다. 호날두는 스포르팅 가면 되고, 메시는 리버 플라테로 가면 된다. 그들이 비록 아직 의견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확히 나와 같은 의견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일단 이들이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운영진보다 축구선수들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스포르팅과 리버 플라테, 말뫼에서 뛰는 것은 우리의 퀄리티를 막지 못한다. 다만 축구를 이 재난으로부터 지켜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