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근황(21.07.14)

불면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큰일이다. 오늘도 오후에 간신히 출근했다. 몸이 안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운동도 했는데, 하루 밤새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듯싶다. 더위, 벌레, 습기… 여름의 모든 조각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거라고 중얼거리니, 오히려 안 좋은 기억이 들러붙어 잠을 망친다.


16년인가  자취방에서 마주한 여름은 무척 더웠다. 벽으로 막힌 탓에 햇빛이 들지 않았지만, 바람도 들지 않았다. 옆 방에서 일어나는 일도 누군가의 가슴팍에 대고 듣는 심장소리처럼 콩닥거렸다. 냉매가  있는지 아닌지도   없었던 에어컨은 콘센트를 꽂기 위해서는   위로 멀티탭을 올려두어야 했다.  집은 제법 유명해졌는데, 청년 주거 실태라면서  방송사가 촬영했고, 교내 신문 기자가 취재 끝에  집은 등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주기도 했다. 애인님은  시절을 떠올리면 여전히 고개를 젓고, 이사하던  도와주던 건축학과 친구는 “사람이 살아서는   같은 태그를 달며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아무튼  집에서 나와 18년에는 반지하로 이사를 갔다.


18년도 여름은 무척 더웠다. 성북천이 가까워 아침 산책을 하기 좋다 정도가 가장 큰 장점이었던 집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왜 그리로 갔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당시에는 금방 졸업하고 떠날 생각이었겠지. 하여간 바람 들고 조금이나마 햇빛 들어오는 그 반지하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에 찬 수건을 걸어두어도 아침이면 땀에 젖은 채 일어나곤 했다. 침대마저 부서져 바닥에 모여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던 시절이었다. 조금도 그립지 않은 시절이다. 앞으로도 그 시절이 전혀 그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대학원에 오며 옮긴 집에 여전히 햇살은 잘 들어오지 않아도 멀쩡한 에어컨이 있다. 이제는 더블 모니터와 1660 달린 컴퓨터가 있으니 피시방에 갈 일도 없고, 제습기도 돌릴 수 있으니 그다지 습하지도 않다. 방이 조금 너저분해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나날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누구 말마따나 생활인의 자취방이고 생활인의 삶이다. 삶의 선택이란 대부분 할부로 결제되는 법이라, 아직 쓰러질 것 같은 방에 사는 이들이 내 친구들이다. 아주 남일 같지가 않은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방에는 대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이런 불면의 밤을 너저분하게 껴안고서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러피안 슈퍼 리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