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큰일이다. 오늘도 오후에 간신히 출근했다. 몸이 안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운동도 했는데, 하루 밤새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듯싶다. 더위, 벌레, 습기… 여름의 모든 조각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거라고 중얼거리니, 오히려 안 좋은 기억이 들러붙어 잠을 망친다.
16년인가 첫 자취방에서 마주한 여름은 무척 더웠다. 벽으로 막힌 탓에 햇빛이 들지 않았지만, 바람도 들지 않았다. 옆 방에서 일어나는 일도 누군가의 가슴팍에 대고 듣는 심장소리처럼 콩닥거렸다. 냉매가 차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던 에어컨은 콘센트를 꽂기 위해서는 내 배 위로 멀티탭을 올려두어야 했다. 그 집은 제법 유명해졌는데, 청년 주거 실태라면서 모 방송사가 촬영했고, 교내 신문 기자가 취재 끝에 그 집은 등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주기도 했다. 애인님은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여전히 고개를 젓고, 이사하던 날 도와주던 건축학과 친구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될 집” 같은 태그를 달며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아무튼 그 집에서 나와 18년에는 반지하로 이사를 갔다.
18년도 여름은 무척 더웠다. 성북천이 가까워 아침 산책을 하기 좋다 정도가 가장 큰 장점이었던 집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왜 그리로 갔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 당시에는 금방 졸업하고 떠날 생각이었겠지. 하여간 바람 들고 조금이나마 햇빛 들어오는 그 반지하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에 찬 수건을 걸어두어도 아침이면 땀에 젖은 채 일어나곤 했다. 침대마저 부서져 바닥에 모여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던 시절이었다. 조금도 그립지 않은 시절이다. 앞으로도 그 시절이 전혀 그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대학원에 오며 옮긴 집에 여전히 햇살은 잘 들어오지 않아도 멀쩡한 에어컨이 있다. 이제는 더블 모니터와 1660 달린 컴퓨터가 있으니 피시방에 갈 일도 없고, 제습기도 돌릴 수 있으니 그다지 습하지도 않다. 방이 조금 너저분해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나날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누구 말마따나 생활인의 자취방이고 생활인의 삶이다. 삶의 선택이란 대부분 할부로 결제되는 법이라, 아직 쓰러질 것 같은 방에 사는 이들이 내 친구들이다. 아주 남일 같지가 않은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방에는 대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이런 불면의 밤을 너저분하게 껴안고서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