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씨와 이준석 씨
최저임금이 얼마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칠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최저임금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배우긴 했다. 최저임금이란 결국, 무한 경쟁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특정 가격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특정 가격에 합의하더라도, 그것이 최저임금 아래라면 많은 노동자들이 지나친 착취에 내몰릴 수 있다. 이에, 국가는 최저임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적인 합의를 제한하고 규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한 주에 몇 시간을 일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해 논할 능력은 없다. 다만,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은 논할 수 있도록 배우긴 했다.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하나인 윤석열 씨가 정말로 주 120시간을 일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스타트업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뿐이라는 그의 해명이 아주 허황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적 권위의 동작 원리나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영 마뜩잖다. 합의를 통해 개인 간의 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기능이자 의무이다. 배당된 사건 맡아 법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기계적인 사고관을 가진 정치가에게 정치적 유능함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윤석열 씨에게 정치적 유능함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그가 입당할 것으로 점쳐지는 제1야당은 최근 공교롭게도 능력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에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의 능력주의는 정치적 유능함과 무능함의 구분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에 따르면, 국민의 힘은 국회의원 자격시험을 도입할 예정이며 공천심사 자격시험에서 엑셀이나 워드 능력을 통해 검증받게 된다. 이준석 대표는 “70대가 교육을 받고 자격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감동을 주게 될 것”이라며 자격시험 TF 설치를 이야기했다. 70대 정치인이 엑셀과 워드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민의를 이끌어내고 합의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들여다볼수록 우습기만 한 이 아사리판은, 현 정권에 실망한 이들의 대안으로 ‘공정과 능력주의’가 부상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큰 비극으로 보인다. 제1야당의 거듭된 헛발질은 곧 제도권 정치가 자정능력을 상실했기에, 철학이 부재한 언어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공론장을 부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무능함과 천박한을 규탄하나, 그래서 결국 정치적 능력이 무엇이며 정치적 품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보다 호불호가 앞질러가는 세상이다. 끼리끼리 모여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모두의 시야를 뿌옇게 흐리고 있다. 혹자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 했지만, 이미 세상은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 영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세상에 윤석열 씨와 이준석 씨가 한 삽 거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