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먹다 남은 묵은지 김치찜처럼 쉰내 나는 쓰레기가 되었지만, 진중권 책 중에 좋아하는 것이 ‘폭력과 상스러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학술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책 전반이 대학생활 초반의 내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줬던 것 같기는 하다. 책 굉장히 초반부였나, ‘마이너스 1의 사회’라는 제목 달린 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약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그를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 정확한 지는 모르겠지만, 거칠게 요약하면 그렇다. 나는 작은 모임, 공동체, 정당, 나아가 사회나 국가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구조가 좋다고 생각을 했고, 대충 그 비슷한 맥락으로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페미니즘이 있었고 촛불이 있었고, 나는 흥미를 느꼈다. 문재인 당선되던 해, 소수자 담론인지 뭐시깽이가 부상할 때쯤 학생회를 왔다갔다 했다. 그 시절에 깨달았던 건,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글로는 설명되지 않는 간극에 대한 것이었다. 포용력 있는 공동체를 얘기하기엔, 간극이 너무 멀었다. 학생사회는 이미 약해져 있었고, 운동한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젠체하는 좆밥들(지금은 ‘제발 좌파면 윤석열 지지합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과 제 또래도 설득 못하는 아싸들(덕분에 나 같은 인간이 마초 노릇을 한다.), 아니면 양복 입고 명함 돌리는 인간들(확실한 건 민주당 비례대표는 못 받았다.)이 절반은 넘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포용하는 형태의 공동체로 기능하기엔, 학생사회는 소멸 직전이었다. 오히려 다양한 병증을 지닌 이들의 도피처라 봐야 했다. 지금 따져보니 나 역시 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병증이 위독하지 않은 이들이 먼저 퇴원하듯,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나름대로 병이 깊었는지, 조국 즈음해서야 빠져나왔다. 조국으로 촛불을 들고 학교의 명예가 어쩌고 하는 인간들을 지켜보다가, 그제야 뭔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백남기 농민을 언급하는 시국선언이 유려하지 않다며 총학 탄핵을 운운하던 인간들부터, 지리교육과 소모임 사건에서 학과의 명예를 운운하던 인간들까지, 무엇인가 명쾌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브랜드 가치 외에는 아무런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떠나려거든 짐을 싸야 했기에, 매일같이 주변을 정리하고 지켜낼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셔댔다. 숙취에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아침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서 대학원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지난주였나, 오랜만에 총학생회 인연국 모여서 술을 퍼마셨다.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인연이 된다. 기억에는 지속적인 유지 보수가 필요한 법이라, 서로의 기억을 술잔에 흐르고 넘치는 말들로 풀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재밌었다. 바른생활은 글렀으나 대체로 진보적 인간이길 희망하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얼추 그렇게 알고 있다. 지금의 나는 정의당원이고, 모 랩실의 연구원이며, 높은 확률로 전력 산업에 종사하게 될 운명이다. 근데 그중 어디에도 전과 같은 애정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진보적 인간이라는 나의 구호는 쪼그라들어, 좀 더 사람을 포용하고 살아야지, 생각하고 만다. 이런 생각을 아침에 쉰내 나는 묵은지 김치찜 설거지를 하다가 했다. 겉절이 시절에 만난 친구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