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근황(21.12.02)

내키지도 않는 글을 억지로 쓰느라 괴로운 중에 다시금 뒷목이 신음을 내지르는 것이 집에 가야겠다 싶었다.  오늘은 작업한 파일을 일부러 드라이브에 올려두지 않았다. 잠시 누워서 뒷목을 달래고 다시 작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랬다. 낮밤이 바뀌었으므로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새벽 3시쯤 된다. 퇴근길에 들어선 해장국 집에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이들이 마저 술을 마시고 있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얼른 뼈해장국에 진로를 하나 시킨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서로 존대하는 커플은 프로이트와 리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둘 사이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는 다시 방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둘 사이의 이야기를 한다. 시시콜콜한 것들이다. 하지만 어딘가 풋풋한 것이, 나도 조만간 애인님과 존대하는 술자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매번 이런 역할극에서 먼저 두 손 드는 것은 내쪽이지만, 다음번엔 다를 것이라고 김치를 씹으며 생각한다. 겨울엔 어딘가 떠나서 밤새 술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뒤에 앉은 아저씨들이 던져대는 대선후보에 대한 욕은 흥미로웠다. “저..저..병신새끼…” 중얼거리는 아저씨의 목소리 뒤로 어눌한 정치인이 “주 52시간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고 웅얼거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의 주간 근무 시간은 52시간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리고 제도가 내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침은 해장국만큼이나 반갑다. 소주를 따서 한 잔 들이켜고, 고기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해장국에 들어간 된장처럼 칙칙하게 얼굴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30분이 채 안 되어 술을 하나 다 비웠다. 배가 부르고 취기가 즐겁다. 혼자 술을 먹는 것이 알코올 중독이라고들 하던데, 나는 지금 이 기분을 병증으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잠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에, 천 원짜리 두 장 꺼내서 사장님께 건네드렸다. 나오면서는 담배나 물고 버벌진트 노래를 중얼거렸다. 불을 붙이려다가 문득 ‘너무 홍상수스럽네’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집 앞 골목에서 담배를 태웠다. 낙엽이 발길에 차인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 흘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젠 푸르디푸른 잎새를 봐도 낙엽이 먼저 떠오를 만큼을 살았다. 취해서 주정뱅이가 되거나 취하지 않고 악당이 되거나, 삶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느꼈다. 겨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황(21.11.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