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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조국’

조국 사태의 결말이라는 것은 조국 딸내미 하나 고졸자로 만들고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딱히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어보인다. 왜냐하면 결국 이는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전형을 전수 조사하여 허위 스펙을 가려내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스펙이라면서 논문에 이름 올리는 고등학생들이 해당 연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도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또한 그것들을 스펙이랍시고 받아서 평가하는 대학 입학처가 그다지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논문 말고도 스펙을 조작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점은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격이다.


그런 현실을 선택하느니 ‘공정’과 ‘상식’의 이름으로 화형식을 거행하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다. 대학의 이름이 곧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는 인간들이 득실대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다. 노력만 하면 스펙이고 시험성적이고 모두 주어진다는 천진한 믿음이 굳건히 모두를 떠받치고 있어야 행복하다. 자기소개서라는 이름의 쓰레기가 글을 쓸 줄도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 수없이 작성되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인간들에 의해 평가되는 현실이야 말로 세상의 종말 전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조국 사태 이전부터 서울권 학생들에 대한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다. 수학 과외를 하러 갔더니, 자소서를 조금 봐달라는 학부모가 있었다. 해당 학생은 서울에서 강남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학구열이 높은 동네였는데, 애초에 쓰는 단어 자체가 다르다. 준비하는 스펙이 다르고, 교내에서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의 영역과 깊이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끽해야 교내 수학경시대회 내지 과학의날 행사가 교내 활동의 전부인데, 얘네들은 실험을 설계하고 소논문을 작성한다. 아예 접할 수도 없는 정보와 활동들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애초에 현재의 대학 서열화와 교육 체계 전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언제나 모두가 행복한 지점에 머무르곤 했다. 대학은 문제가 더 커지지 않으니 행복했고, 소위 명문대생이라는 인간들은 본인들의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어 행복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여전히 피해자 행세할 수 있으니 행복했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정의가 구현되었다며 행복했다. 물론 여기서 호구가 된 것은 비례대표 늘려서 행복할 예정이었던 심상정과 그가 이끌던 당인데, 3% 정도는 대한민국에서 무시가능한 노이즈이기 때문에 예외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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