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금요일에 만난 친구가 도시락 기프티콘을 하나 주었다. 밥은 챙겨 먹으라는 말에 감동했으나 으레 금요일이 그렇듯 다른 이들과 술을 마시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것을 기억해낸 것은 토요일 오후 늦은 때였다. 420호의 주말은 유난히 잽싼 녀석이어서, 정신을 차려보면 손아귀를 빠져나가기 일쑤다. 3월의 마지막 토요일이 슬그머니 도망가고 있었다.
이 도시락 집은 8시면 문을 닫는다. 그러나 요즘 확실히 사먹는 밥에 질려가고 있었다. 간만에 장을 보러 마트로 향했다. 우유 하나, 카레가루 하나, 순두부 한 봉지와 콩나물을 조금 샀다. 돌아오는 골목에 고양이를 마주치고 깜짝 놀랬으며, 뒤이어 따라오던 여성이 큭큭대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은 신경쓰였다. 집에 돌아와 카레를 해서 밥을 먹었다. 김치가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김치 있다. 잘라먹기 귀찮았을 뿐이다. 지쳐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잦다보면 집은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배를 좀 채우고 나니 처참한 몰골이 눈에 들어와 청소를 했다.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서 그림자노동의 위대함에 몸서리쳤다. 삼시세끼 그 방송을 몇 번 본 적없이도 좋아했던 건 차승원이 나와서 어묵을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하루 종일 뭘 먹을지 고민하고 노동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빽빽하다. 우리 사는 일이 사실 삼시세끼 편히 먹자고 하는 짓들 아닌가. 삶은 삼시세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먹으러다니는 일이라는 후배를 떠올리고 이 녀석이 나보다 낫구나 싶어 키득거렸다.
밥을 먹고 다시 출근을 했고, 일을 핑계로 모니터와 눈싸움만 했다. 대자보에 들어갈 문장을 고르다, 나는 왜 문재가 없나 싶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운동을 갈 생각이니 이만 잠에 들어야 했다. 내일 아침은 어떻게 먹을까. 남은 카레로 적당히 때워야하나. 아니면 콩나물을 볶아서 먹어볼까. 내일 성북천에 가거들랑 계란을 좀 사올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새벽이 반쯤 지났다. 이것 참, 큰일이군. 내일은 친구가 보내준 기프티콘이나 쓰련다. 그만 자련다. 건강식을 먹고 건강을 챙길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