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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여행을 글로 남기나?

남도단박, 서론

삶의 모든 경험이 기록될 필요는 없으며, 여행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여행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는 마음이 여행을 그르치기도 한다. 눈으로 담지 못한 풍경이 사진으로 대체될 수 없고, 마음으로 담지 못한 감상이 글로 되살아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도 여행을 글로 남기겠다고 생각했고, 남도단박이라는 가제를 붙여 구성하였다.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첫 번째 이유는 매어두기 위함이다. 간만에 혼자 떠난 여행에서 하고 싶은 대로 놀고먹으며 잘 쉬다 왔다. 그럼에도 바쁜 일상이 즐거웠던 기억을 함부로 흘려보낼까 걱정스러웠기에, 글을 적어 단단히 매어두려 한다. 동시에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또 다른 이유는 풀어주기 위함이다. 흘려보낼 것들을 흘려보내기 위함이다. 삶에 조그만 생채기라도 나면 거대한 균열이라도 되는 듯 호들갑 떠는 것에 질려버렸다. 공교롭게도 요즘의 나는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것을 흘려보내기에도 글이 유용하다고 믿는다.


남도단박은 시간의 순서와는 무관하게 구성되었으며, 열정적인 독자만이 모든 글이 제시된 이후에 다시 읽을 수 있는 경험을 얻길 바라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내보이며 많은 이에게 읽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행간의 침묵마저 읽어낼 수 있는 깊은 읽기이기는 하다. 앞서 이야기했던 무엇을 매어 두고 무엇을 흘려보내는지에 대한 답변은 행간에 놓아둘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 간만에 임하는 글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지금 적는 이 글은 일종의 서론을 맡고 있다. 학술적인 글이었다면 다른 문헌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마땅하나,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배우 김태리의 브이로그 영상을 보고 여행을 계획했다는 것은 밝혀둔다. 그녀가 영상에서 보여준 자유로움이 남도를 다녀오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글은 총 7편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매일같이 내보이기에는 내가 사는 게 좀 바쁘지만, 그런대로 구상은 해두었다. 목포의 취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가, 녹음이 우거진 강진의 시골길에서 끝날 예정이다. 일단 오늘은 목포항에서 컹컹거리는 사진을 곁들인다. 사진을 찍어준 것은 물론이고, 술자리를 함께해주며 험한 꼴 지켜봐 준 P에게 별도의 감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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