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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에 담는 숨입니다, 거기에 산을 녹여 마시지요

남도단박, 세 번째 이야기

바쁘게 차를 몰았다. 혼자 달리는 기분이 제법 상쾌했다. 니코틴과 카페인을 보충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도 다도 체험하러 가는 사람이 커피를 들고 가는  아니다 싶었다. 예정보다 밀린 일정 때문에 시간도 넉넉지는 않았다. 구간 단속 장비 하나 없는 고속도로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생각해보니 고속도로 주행이 처음이었는데, 여태껏 달려본  없는 속도로 달렸음에도 수많은 차가 나를 앞질러갔다. 2차선을 타고 있어도 백미러가 따가운  같았다. 주행이란 개인적인 공간과 사회적인 공간이 교차하는 행위인 것이다. 자율주행 기능은 최소한의 집중력으로 사회적인 공간을 개척해나가는 것에 도움을 주었고, 자동차가 보장하는 개인적인 공간은 움직이는 노래방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나는 보다 개인적인 공간을 개척하는 것에 집중력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월비, 기리보이, 재키 와이, 켄드릭 라마, 그린데이, 릴 웨인 정도를 들었다. 조금  한국적인 플레이리스트가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교양이 그리 깊지 못하다. 락과 힙합의 경계선에서, 과속과 융통성 있는 주행의 경계선에서, 그렇게 30분쯤 달려서 백운차실이란 이름이 붙은 곳에 왔다.



한옥과 양옥의 경계선에 서있는 이 찻집에서 다도체험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잠시 둘러보고 있자니 자리를 안내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상에는 두 종류의 다기와 간단한 주전부리가 놓여있었고, 세상 인자한 웃음의 주인 어르신이 반겨주셨다. 주인 어르신께서는, 이한영 전통차 이야기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곳을 운영하시며 전통차 알리기에 힘쓰시는 듯했다. 이한영은 주인 어르신의 7대조 어르신이라 했다. 단아한 중년 여성이셨지만, 괜한 무게감은 없었고 그 점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다도체험을 시작했다.


처음 맛본 차는 백운옥판차라는 이름의 차였다. 백운옥판차는 이한영 선생님의 스승인 정약용에게 보내던 차인 동시에,  조선  상표라고 했다. 여린 잎을 따다가, 다산께서 이야기한 방식 그대로 만들어낸 차라고 했다. 다산이 과연 차에 얼마나 능통했을지, 그래 봤자 귀납적으로 도출한 그의 결론을 얼마나 신뢰할  있는지, 그런  궁금해하는 것은 이곳에서 허락되는지 속으로 질문을 삼켰다. 주인 어르신은  속을 읽기라도 차를 대하는 예법 같은  딱히 없노라 일러주셨다. 다만, 색을 보고 향을 맡고  모금 넘긴  한옥 뒤로 펼쳐진 산을   봐달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차는 생각보다 매우 훌륭했다. 연두색 맑은 물이 찻잔에 담겨있었다. 녹차의 향이 진하게 퍼져왔으나 거칠지 않았다. 부드러운 붓으로 혀를 쓸어내리는 듯했다. 목 끝에서부터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 일렁거렸다. 이영도는 자신의 소설에서 비형 스라블의 입을 빌려 술을 묘사한 바 있다. “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시지요.” 나는 이영도만큼의 문장을 적어낼 자신이 없어, 그의 문장을 빌려 새겼다. “한 잔에 담는 숨입니다, 거기에 산을 녹여 마시지요.”



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리는 동안 차를 내리는 이는 차를 살피지 않는다. 뚜껑을 덮고 조용히 기다린다. 그 사이 산의 녹차밭과 하늘의 태양과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을 떠올리며 가라앉는다. 잠시 후 차에 녹여낸 산의 빛깔을 즐기며 한 모금 넘기고, 숨을 뱉어본다. 다시금 차를 우리기 위해 다기 안을 들여다보면 물기를 머금은 잎사귀가 여전히 나무에 달려있는 듯 싱그럽다. 다시 뜨거운 물을 붓고 녹찻잎보다 날숨에 산내음이 배어들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두 번째 차는 월산 떡차라는 이름의 발효차였다. 마이야르 반응을 거치지 않아 남아있는 찻잎의 효소 성분을 통해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발효차라고 했다. 역시 훌륭했다. 은은한 붉은빛과 갓 빻아낸 고춧가루 향이 났다. 거기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달콤함이 함께 했다. 몸에는 열기가 돌았지만, 정신은 청량해졌다. 술에 익숙한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설렘이다.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대놓은 논 위로 나 역시 미끄러졌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흩날리고, 삶의 계획표가 녹아내렸다.



차를 즐기는 동안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주인장이 자리를 비켜주셨다. 차가 이뇨작용을 돕는다며 화장실을 가리키는 것도 있지 않으셨다. 주인장께서는 거듭 힐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차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나는 힐링이라는 말을 들으면 발작처럼 짜증이 난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 싶어 입을 다물었다. 차는 여러모로 술과는 반대로 기능한다. 정조가 주는 술을 그렇게 싫어하던 정약용이 왜 차에는 그토록 미쳐있었나 생각을 해봤다. 꽤나 자주 폭음하는 인간이지만, 나는 차 역시 싫지 않았다. 그것이 250년 세월 끝에 발전하는 인간의 취향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냥 돌아서는 것이 아쉬워 차와 간단한 다기 몇 가지를 샀다. 아는 친구 하나가 차를  모금 마시고, 소주를  모금 마시는 주도를 이야기한  있었다. 언젠가 시도해보겠다고  다짐하고 차실을 나섰다. 잔뜩 마시고 어쩐지 취한 기분인데, 차에 다시 타는 것이 뭔가 어색했다. 담배를 하나 태운 후에, 다음 목적지를 떠올렸다. 모든 강진의 여행객들은 다산초당으로 행하는 여정을 거친다고 했다. 평생  없이 살다가 유배지에 와서 차를 즐기다가 다산이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유배가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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