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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단박, 다섯 번째 이야기

다산초당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에, 딱 세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간만에 한 곡 한 곡 씹어보려 한다.


1. Swervy - January Embers

위대한 락이 흔히 그렇듯, 나는 이 곡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곡이 슬픈 사랑의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찬바람을 맞아 지쳐 스러져가는 1월의 불씨 같은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디에서 이 사랑이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붉은 불꽃이 스러져 모든 게 회색으로 변할 때에는 나를 찾아달라는 절규라고 생각한다. Swervy가 락 사운드에도 훌륭한 음악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규 1집의 파랑에서 보였던 퍼포먼스 역시 강렬했다. 이 두 곡을 이어서 해석하는 것도 재미있다. “Please take my blue Away from me, my blue.“ 라고 노래하던 그녀는, 그 파랑을 불태워줄 아무도 모르는 사랑을 했다. 그리하여 불꽃을 태웠으나 이제는 그마저 1월의 불씨로 남았고, 모든 게 회색으로 변하는 순간을 손꼽는다.


2. 기리보이, Jacky Wai - 호랑이소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 목표를 위해서라면 행동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야 한다. 그런데 기리보이와 재키 와이가 이 곡에서 묻는 것은 다르다. 우리가 정말 호랑이를 잡고 싶었나? 하는 물음이다. 현대인은 결국 ‘뭔가 중요한 게 있었는데…’하는 기억상실을 반복하기 마련이며, 생각하는 대로 사는 대신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어쩌면 이 획일적인 삶의 방향성이야 말로 호랑이 그 자체라서, 달리는 범의 등에 올라탄 이들이 뛰어내리기란 불가능하다. 기리보이와 재키 와이는 어설픈 의지를 설파하지 않는다. “나는 가볼래 내가 알던 곳부터 낯선 곳도 내가 바보래도 나는 가볼래 들어가 볼게”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그리고 그 후에 “전부 가볼게 전부 다 볼게 전부 가본 뒤에 날 조용히 묻어줘 서울 아닌 곳에 그때라도 맘 편히 쉴 수 있게 “ 부탁할 뿐이다.


3.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여름이 괴로웠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화자에게 여름이 행복했지만 이젠 사라진 추억인지, 아니면 그저 괴로웠던 시절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귓가에 맴도는 것은 9월이 끝나면 그제서야 자신을 깨워달라는 간절한 부탁일 뿐이다. 별에서 떨어져 눈부시고 눈 시린 빗물이 우리를 적시고, 화자는 이제 고통이 나인지 내가 고통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니 제발 9월이 끝나면 그때 깨워달라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죽음과 같은 무의식에 안겨 있고 깊은 것이다. 그는 나약한 인간일까? “As my memory rests, but never forgets what I lost.”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것은 감각되는 법이다. 충만한 하루 속에도 내 안에 뻥 뚫린 구멍이 있어 바람이 드나들 적이 시리고 아프다. 그러니 나는 그가 나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10월을 넘어 겨울로 향하는 계절에도 그 공백은 아물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9월이 끝나면 깨워달라는 그가 오히려 의지적이라 평가하고 만다.


전화기는 세 곡만을 반복 재생했고, 나는 어둑한 거리를 따라 목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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