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단박, 여섯 번째 이야기
전화를 끊고 소주를 한 잔 삼켰다. 아침부터 운전하느라 고생했으니 오늘은 좀 취해야겠다. 술냄새 좀 풍기고 주사를 부려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밤거리는 시끌거렸지만, 내 속에 댈 바는 아니었다. 자유? 무척이나 두려웠다. 차라리 이 방 안에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지역에 가면 지역 소주를 마셔야지. 남도의 소주는 잎새주라고 했다. 무슨 다른 맛이 나나 싶어서 한 잔 또 삼켰다. 하지만 혼자 먹는 소주가 즐거웠던 적은 별로 없다. 아무나 같이 술을 마셔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행을 구해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건 당신에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데. 내게는 오랜 동행이 있지, 자조와 환멸이었다. 소주를 한 잔 삼켰다.
일종의 정서적 학대인가 생각했다. 다시 소주를 한 잔 삼켰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누가 누굴 괴롭히고 그런 게 아니다. 가슴은 단단하게 차가운 밤바람에 맞서는 모습 귀족처럼 당당하게. 주문을 외워야 한다. 나는 그런 모습으로 무너지고 싶지 않다. 내내 기다리던 전화기가 기억할 숫자 몇 개를 덜어주었다. 소주를 또 한 잔 삼켰다. 나는 화를 내야 했다. 그래야 이 두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마냥, 극한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도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열을 내다가도 식어버렸다. 왜 자꾸 미련하게 구냐 물었다. 아직 드리지 못한 사랑이 있어 그랬다. 소주를 삼키려다 다시 내려놓았다.
언제나 받지 못한 사랑에 툴툴댔으나, 그게 아쉽지 않았다. 사랑을 드릴 적에야 나는 행복했고, 드릴 수 있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나는 성실하게 사랑을 납품했던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건 다년간의 계약 끝에 납품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탓할 필요가 없다. 상생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삶의 개선이다. 나는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그분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주변의 시선이 그랬다. 가끔은 그분조차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했다. 소주를 마저 삼켰다. 굳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필요가 없는데, 그래서 감상적인 것들을 치워두고 냉정해지려 노력했다. 그건 사실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차라리 자격지심이었다면 나았을 텐데, 그 분과 내 간극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혼자 온 여행의 끝에서 내가 마주할 것이 이런 순간이라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여기 뭘 좀 찾으러 왔단 말이다. 고작 이별을 얘기하러 300km를 와야 했을까? 아니 어쩌면 300km를 왔더니, 그래서 뭘 좀 찾았더니, 그래서 얘기할 수 있었던 걸까? 술은 답을 알고 있다. 그놈의 소주를 마저 마셨다. 이 나라 모든 소주는 일곱 잔 하고 반 잔이 나온다지. 병에 남은 애매한 소주가 미처 드리지 못한 내 사랑 같아서 웃었다. 울었나? 웃었다. 담배를 태우고 재떨이 대신 소주병에 꽂아 넣었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병 안에 연기가 오른다. 소주병도 나와 같이 한숨 쉬는가 싶어 반갑다. 아이고, 여기 동행이 있었구먼. 근데 미안, 먼저 자야겠네. 오늘 술이 받질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