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단박, 일곱 번째 이야기
아침 일찍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는 내일 일정이고, 오늘은 강진으로 향할 참이었다. 근처에서 차를 빌리고는 얼른 강진으로 향했다. 음악도 틀지 않았다. 한적한 도로에 햇살만 조금 부서졌다. 가끔씩 어르신들이 천천히 길을 건넜고, 나는 즐겁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로수가 늘어선 강진의 시골길은 예뻤다. 쓰기에는 이렇게 단순히 써도, 말하라면 “예에에에에에뻤다.” 쯤이 될 것 같다. 초여름인지라 꽃이 아주 흐드러지게 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가로수는 연두색 잎사귀가 차에서도 싱그러워 보였다. 여름이라기엔 온화했고, 봄이라기엔 꼿꼿했다.
연두색 가로수 아래로는 노란 꽃이 정신없이 피어있었다. 드문드문 핀 것 같다가도 꼼꼼히 길가를 채웠다. 잠시 길에 내려서 이름 모를 노란 꽃을 쳐다보았다. 왠지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꽃 핀 쪽으로 가자고 어머니 손을 잡아끄는 아이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비극성이 옅어질 정도로, 나는 그냥 풍경에 취했다.
땅을 보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로수 사이 열린 하늘이 마냥 푸르지는 않았으나 그건 또 그것대로 좋았다. 머릿 속으로 다른 계절을 비춰볼 수 있어 좋았다. 봄의 벚꽃과 하늘의 색감은 어떠할까. 겨울의 눈발 흩날리는 짙은 하늘도 좋을 것 같았다. 아 그래, 이 거리에 가을 하늘이 드리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가을 하늘에 대해 한 조각 심상을 가지지 않을까. 나도 가을 하늘에 가진 심상이 한 조각 있어 서로 대어보니 얼추 맞는 듯했다. 괜히 설레는 마음에 선글라스를 매만지고 혼자 웃었다.
머릿속에 그런대로 몇 문장을 적어두고 다시 차에 올랐다. 문장도 나도 오롯이 그대로였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더라도, 크게 상하진 않을 터였다. 강진의 시골길을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천천히 달려야 문장도 나도 깨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