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대신 찍을 수 밖에 없었던 물음표
<퍼펙트 데이즈>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이 사랑스러움에도, 적지 않은 장면에서 우려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방점이 조금 잘못 찍힌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데, 주변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가 젠더적으로 독해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젠더적으로 독해되어야 하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러한 분류 사이에서 애매한 포지션에 놓여 있는 영화라고 생각이 드는데, 영화가 전시하는 여성관이 적극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영 누추한 감상들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 피프티 같은 단어마저 횡행하는 시대에 아재 감성은 죄악이 되어 버렸을까?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아재가 되어버리는 나이-많은 주변인들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이미 아재가 되었음을 상기시키겠으나-인지라 이런 질문은 내게도 유효한 것 같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죄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마냥 마음 놓기에는 이 영화 분명 조금 불편하다.
퍼펙트 데이즈에서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여성은 총 세 명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여성은 나이 어린 후배의 애인인데, 주인공 히라야마와 그녀는 음악 취향이 서로 통한다. 히라야마는 누구에게나 그런 것처럼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이미 꿈에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릴 정도로 그녀를 무의식 중에 신경쓰고 있다. 그녀는 후배와 헤어진 이후 히라야마를 찾아와 슬쩍 했던 카세트 테이프를 돌려주면서 볼에 입맞춤을 한다. 히라야마는 당황하지만 그녀를 보내고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두번째 여성은 그의 조카이다. 히라야마와 그의 누이는 평소 교류가 거의 없는 모양인데, 히라야마의 단절된 과거에 사연이 많았을 것이라는 것도 자연스레 암시된다. 조카는 엄마, 즉 히라야마의 여동생과 싸운 뒤 가출해서 히라야마에게 찾아오고 그의 일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부녀관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순박한 히라야마의 모습 때문인지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히라야마가 쉬는 날 찾아가는 술집 마담이다. 그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한국 노래가 있는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다. 히라야마는 레몬사와 한 잔을 마시며,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그녀가 부르는 구슬픈 노래를 미소지으며 바라본다. 히라야마 역시 그녀를 향한 연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인게, 그녀가 전남편과 있는 모습을 보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 맥주와 담배를 사들고 강가로 향한다.
앞서 언급한 장면들이 왜곡되어 펼쳐지는 광경을 생각해보자. 이미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짜증스러운 감상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 분명한 건 히라야마는 현실의 어떤 아재들과는 달리 놀랍도록 무해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는 또다른 여성을 통해 객관화된 히라야마의 모습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극에서 대사 한 마디 없지만 히라야마가 점심을 먹는 신사에서 눈인사를 건네는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에게 히라야마는 일상 반경 언저리에 놓인 사람이고 그녀는 히라야마를 만날 때마다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는다. 그녀에게 민망한 웃음을 짓는 히라야마가 안쓰럽기도 할 정도다. 그녀에게 히라야마는 점심시간에 사진을 찍는 괴상한 아저씨로, 공중화장실 근처를 배회하며 춤추는 노숙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영화가 아재들의 환상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불공평하다. 이 영화는 아재들의 환상이라는 한 권 소설 군데군데 현실이라는 낙엽이 끼워져 있다.
그러니 지독하게 대상화된 여성들과 그를 통해 표현되는 히라야마라는 노동자, 예술가, 생활인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결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방점이 보다 노동이나 예술에 찍혔다면 어땟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어쩌면 그 애매한 지점에서 이 영화의 성취가 도드라진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의 마지막, 히라야마의 또 하루가 시작되고 붉은 햇빛 아래 울먹이듯 환희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은 앞선 생각들을 전부 비워낼 수 있을 정도로 인생에 대한 장엄하고 견고한 찬사로 가득하다. 그 감정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는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니 여전히 내게 이 영화는 물음표로 남고 말았다. 차라리 그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 섣부른 느낌표를 찍는 것이야 말로 가장 경계해야할 태도가 아닐까. 이 영화의 느낌표는 야쿠쇼 코지와 그가 찍는 나뭇잎 사이 반짝이는 햇살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