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25.02.07)

수컷론

by 취생몽사

요즘 친구들과 술 먹을 때마다 꺼내드는 나의 독문이론이 바로 수컷론이다. 분명히 해야할 것은 내가 수컷론에서 정의하는 수컷은 당연히 성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결코 이상적인 리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수직적이고 위계가 분명한 조직에서 리더가 보여줄 수 있는 미학의 일종이다. 즉 이 수컷은 명사보다는 형용사로 수컷답다고 쓰이는 게 맞다. 마초와도 그 결을 같이 하지만 마초가 지닌 함의 중에서 가부장의 역할을 덜어낸 것으로 봐도 좋다. 수컷은 기본적으로 책임/의리/신념으로 구성된다. 하급자와 조직에게 책임을 다 하며, 동료와 상사에게 의리를 지키되, 가슴 가까운 곳에 신념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수컷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과 그 동조 세력이 가장 혐오스러운 지점은 저들이 자꾸 수컷을 모욕한다는 점이다. 홍장원 1차장이 지난 5차 변론에서 보인 태도는 수컷이 겪는 모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는 홍장원의 화법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짙고 깊은 환멸이었다. 홍장원은 수컷으로 분노하고 수컷이라 환멸했다. 혹자는 윤석열에게 시원하게 쏘아붙이는 홍장원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으나 한평생 보수적인 사람으로 살아오며 모셨던 사람에게 끝없이 모욕을 벋는 그가, 환멸에 차서 힘빠진 말을 늘어놓는 것은 당연하다. 그 힘빠졌으나 사리분별 정확한 단어들은 수컷다움의 일부다.


그는 이미 국회에서 수컷의 책임을 보였다. 조직을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직업정신을 강력하게 선보였다. 헌법재판소 변론에서는 그가 지닌 의리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눈길도 주지 않는 대통령에게 90도로 인사하며, 대통령의 말을 대놓고 반박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모셨던 상사에 대한 그의 의리이기 때문이다. 수컷이 한 번 신뢰를 주었다면 그것을 거둬들이는 것도 신중히 해야하는 법이다. 때론 그에 이용당하더라도 그리고 그 배신이 수컷 본인을 거의 죽기직전까지 몰아붙이더라도,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수컷다움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임과 의리를 모두 떠받치는 것이 신념이다. 신념이야 말로 관료를 공포로부터 지켜내며 관료를 낭만가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관료는 그 특성상 언제나 두려움을 안고 산다.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기 마련이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 보신주의가 앞선다. 하지만 때로 어떤 관료들은 다칠 게 뻔한 싸움인데도 전장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상대는 강대하여 맞선다면 분명히 피투성이가 될 것임에도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여기 이 순 간이 바로 신념이 위치한 자리다. 홍장원이 마주하고 있는 계엄의 풍경이란 그런 것이고, 특전사령관 곽종근이 뒤늦게나마 참전한 곳이 그런 곳이다. 윤석열같은 좆만한 사내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이들을 보며 도파민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희열이 아니라, 수컷다운 사내들이 절멸한 시대에 마주하는 경탄이다.


물론 그러한 수컷들이 즐비한 시대를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 시절의 힘없는 자들의 삶은 보다 가혹했다. 진보적 인간됨을 다짐하는 내게 있어 내가 원하는 세상 속 그러한 수컷들은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한 유해조수다. 그럼에도 일단은 이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건, 이 공화국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니, 공화국의 과거도 예외는 아니다. 공화국 전체가 그들의 발끝에 달려있다. 공화국이 공화국이 되기위해 먹어치운 피와 절규가 어떤 의미를 갖게되는지, 그저 저들의 발끝만 쳐다보는 나날이다. 이토록 무력한 필부의 삶이란 모욕적이나, 파렴치와 패악질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수컷들이 벌어다 준 이 시간을 빌려 나는 한 문장이라도 더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올 해 겨울이 참 춥고도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