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지금의 집 주소는 길 하나를 두고 동대문구에 놓여 있으나, 내 일상반경은 대부분 성북에 걸쳐져 있다. 당 지역위도 성북구위원회 소속이고 아마 취직하여 이 동네를 뜬다 해도 성북위에 계속 적을 두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법적으로 동대문구민인 나는 그깟 행정구역 따위로 정의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성북구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다. 석계부터 정릉까지 모든 지하철 역마다 갈 만한 음식점을 두세 개씩은 댈 수 있다. 그중에 성신여대입구하면 떠오르는 맛집은 당연히 밀양손칼국수이다. 이 집을 즐기는 정석 코스는 동태전과 수육을 먹으며 소주를 까다가, 칼국수를 사람 수의 반만큼만 시켜 나눠 먹는 것이다. 아직도 탄수화물이 모자란 친구가 있다면 맞은편의 김밥집에서 한 줄 사 먹어도 좋다. 성신여대에서 미아리 고개로 가는 방향 깊숙한 곳에 있는 보물 같은 음식점이다.
오늘은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있는 칼디카파 까페를 다녀왔다. 부쩍 날카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여기를 왜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른 하나가 된 첫날에는 뭔가 특이한 짓을 해보고 싶어서? 뭐 그냥 당장 일하기가 싫어서? 아무튼 칼디카파 까페에서는 미인도 투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여 근황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는 행사가 열렸다. 나는 정의당 지역위 운영위원이라고 뚝딱거리며 자리에 함께 했다.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아래 작은 공간에 주민들이 함께 모여 조성한 공간의 이름이 바로 미인도(미아리고개 사람들의 길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다. 이 공간은 기존엔 쓰레기로 가득한 버려진 땅이었으나,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들의 일념 하나로 문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적어도 작년 여름까지 7년간 성북구 문화 예술인들에 의해 유지되고 운영되는 공간이었으며, 공동체의 기억과 연대가 쌓이는 공간이었다. 예술인들이 구청장에 비판적으로 굴었기 때문인가? 구청장 사람이 대표로 자리한 성북문화재단은 급작스럽게 기존 사업을 훼방하고 계약을 파기한 채, 기존 구성원들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공개 토론을 제안하고 점거 농성을 진행해도 돌아온 것은 명도 소송이었다.
기억은 육체에 쌓이고 그 흔적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이 특정 공간에 쌓이기도 하는데, 그 공동의 흔적은 문화라고 부른다. 그러니 문화를 훼방하고 파기하며 면박하는 행위는 삶을 훼방하고 파기하며 면박하는 행위와 진배없다. 그러니 그것을 지켜내려는 투쟁 역시 삶을 지켜내려는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간담회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미인도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분들이 어느 정도는 패배를 예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것이 윤석열이라는 코스믹 호러에 빨려 들어간 지난 연말 이후로는 이 분들의 상황 인식이 더욱 절박해졌을 테다. 이 분들이 당장 투쟁을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결국 공간을 빼앗긴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치 공간 없이는 학생 자치도 없다”는 학생회의 낡은 슬로건을 떠올렸다. 아마 내가 마지막으로 쓴 대자보 역시 공간에 대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처음으로 이 의제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당 성북위원장님이 큰 힘이 되어주셨다는데, 우리 당은 같이 뭘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약간 경쟁심이 생긴다. 지역위의 다른 의제들은 선배님들이 잘 하시겠지만 이런 의제는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의제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끝나고 사무국장님을 만나 발표자료를 전달해 달라고 말씀드렸고, 이번 달 운영위원회는 가급적 참석해서 논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퇴근시간은 애당초 목표였던 자정을 훨씬 넘겨 아침 6시 40분에야 퇴근했고, 지금은 자기 글렀다는 생각에 이 글을 적으며 담배만 피우는 중이다. 워낙에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아 생활인 겸 활동가로 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오늘 저녁엔 승찬이랑 러닝을 같이 하기로 한 것 같은데, 서른 하나의 몸뚱아리는 하루를 밤새도 5km 러닝이 가능할 것인가 궁금하다.
정신없는 생일이었다.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