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만의 성난 사람들
60년 전,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자신이 왜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 자책했다. 그는 자신의 옹졸함을 인정하며 절정 위에서는 조금쯤 비켜선 자신을 비겁하다며 꾸짖는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시의 생명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한 것들은 계속해 분노할 자유를 주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1965년의 김수영이 되어 마음을 다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자꾸 의구심이 든다. 김수영의 시가 이제 그 생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세상은 이제 완전히 미쳐버렸다. 인류가 야만과 문명의 갈림길에서 차례로 넘어지는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강조하며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접어들었다. 광장에 몰려나온 반공화국 역적들은 연일 내란을 옹호하며 음모론을 흩뿌린다. 저들의 오염된 언어가 광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공화국의 핏물이 마른 대지 위에 쏟아진 오수 위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 두어 자유를 반납한 짐승들이 날뛰고 있다. 평범한 이들, 힘없는 자들,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 모두가 모욕받는 나날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항시 분노한다. 어제 나는 백석의 시를 읽다가 요즘 나를 화나게 하는 사소한 것들을 나열해 보기로 했다. 새로 나온 영화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비평이 짜증 나고, 과제 이전 처리가 되지 않아 아홉 달쯤 밀린 연구비가 원망스럽다. 할 일이 태산이라 콜드플레이 공연을 취소해야 했으며, 주문한 술이 제때 도착할지 걱정스럽다. 이 켜켜이 쌓인 소소한 짜증과 분노가 얼마나 평화로운가? 이런 일상을 사는 내가 분노하는 거대한 것들에 대해 다시 적는다. 대학 본부의 학생을 향한 고소/고발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무기력해 화가 나고, 내란 때문에 광화문과 여의도로 이목이 휩쓸리는 사이 지역 자치 공간 침탈이 아무렇지 않게 진행 중이라 화가 난다. 내란 수괴의 구속이 취소되고 유력 대권 주자의 졸렬한 언행이 이어지며, 여전히 진보 정당이 설 자리가 없어 답답하다. 평화를 대가로 광물을 내놓으라는 노골적인 제국주의와, 효율을 빌미로 이념을 잃어버린 일론 머스크라는 공학에 모멸감을 느낀다. 생활인도 활동가도 아닌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즉, 분노와 환멸로 가로놓여 있다.
나만 그렇겠나. 좌파들이 민주당 안 찍어서 이 사달 났다는 민주당원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그들 앞에 분노와 환멸로 가로놓여 있다. 출소해서 김치찌개 끓여 먹은 내란 수괴에게도 나름의 분노와 환멸이 가로놓여 있다. 하다 못해 매일같이 종로경찰서에서 노숙하며 탄핵 반대 집회 예약하는 인간에게도 분노와 환멸이 가로놓여 있다. 그러니 실로 오천만의 성난 사람들 속 필부로서 살아가는데, 나 혼자만 부동심이 어떻고 차분함이 어떻고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미친놈처럼 보인다. 나는 차분한 대응과 합리적 제안을 기반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이제 지겨워졌다. 그건 잘난 네 놈들이나 해라. 나는 스물세 살 마음먹었던 대로,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 좆같은 건 좆같다.” 말하지 못하면 후에 후회할 것 같다. 내키는 대로 산다. 어차피 등 돌릴 사람들은 애저녁에 등을 돌렸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 몇 명(제법 많다.), 술 사준다는 친구 몇 명(꽤나 적다.), 존경하는 선배 몇 분(거의 없다.) 모시고 대학원 생활의 끝을 볼 예정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영 비릿한 구석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술에 취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쓰고 싶다. 이 분노와 환멸에 과몰입하지 않는다면 좋은 소식들이 있다고. 노무사 시험 준비하던 친구가 합격하고선 완연한 운동권이 되어 여기저기 집회 돌아다닌다고. 신장 이식받은 선배님이 얼추 몸이 나아져서 체중이 돌아오고 있다고. 스무 살에 인생 망했다며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킬킬거리던 친구 중 하나는 결혼을 한다고. 봉준호는 다음 작품을 준비할 것이고, 박찬욱이 곧 신작으로 돌아온다고. 이 황량한 세상과 분리된 채로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은 새벽 별처럼 반짝이다고. 그러나 오늘은 야근이 필요한 날이고, 잔뜩 화가 난 대학원생 셋이서 훠궈를 나눠 먹으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했다거나,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비릿한 속을 달래려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떠먹고 싶지 않았다. 연구실에 돌아오며 담배를 하나 태우는데, 참 좋아하던 가수가 죽었다. 요즘 참 힘이 많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