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25.04.05)

윤석열 탄핵 인용 이후

by 취생몽사

아파서 깼다. 몸이 주초부터 좋지 않았는데, 4일 내내 술을 마셨다. 탄핵 선고 날짜가 발표되던 날부터 마셨다. 내전에 임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술만 마셨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노인네들 시체를 넘고 넘는 상상을 했다. 오늘은 안도감에 당원 동지들과 몇 잔 먹었는데 헛구역질이 나길래, 몸살 약을 한 줌 집어먹고 자다가 깼다. 일어나서 확인한 뉴스에는 휘황찬란한 단어들이 지면을 수놓고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승리이며 위대한 국민이 이뤄낸 빛의 혁명이라고 했다. 언론과 민주당의 호들갑은 유구하고, 나의 그에 대한 냉소가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승리는 무슨 얼어죽을 승리인가. 계엄이 상처입힌 이 공화국은 대체 어떻게 치유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경제적 손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피로 쓰여진 이 공화국의 역사는 모욕당했고, 그래도 그 역사 끝에 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공화국의 정치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총칼을 들이밀면 안 되는 거에요.’를 가르쳐야 할 수준으로 나락에 빠져버렸다.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삼 할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짐승들인 주제에 중국공산당을 욕하는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제발 혁명 소리는 아무데나 붙이지 마라. 가뜩이나 쪼그라든 여당이 여당 지위 내려놓았다고 혁명인가?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세상의 비참이란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음험하고 불안한 삶들은 계속해 누적되고 있고, 언젠가 이 모순이 우리 모두를 쓸어갈 버릴 것이다.



지난 사개월은 냉소(冷笑)주의자로 살아가기에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조차 계엄의 밤을 떠올리면 열루(熱淚)가 흐를 것 같다. 노인들은 살 만큼 살았으니 가장 앞 줄에 있어야 한다는 어르신의 말을 기억하고, 거기서 마주한 당혹과 안도 섞인 친구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지도자는 커녕 수컷조차 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싫다며 악다구니를 썼다. 제6공화국이 들이마신 피의 부피를 물리적으로 감각해보려 노력할 때마다 7평짜리 내 자취방이 피로 가득 파올라, 익사할 것만 같았다. 이런 나날 속 차가운 웃음을 짓는다는 게 내게는 도무지 쉽지 않았다. 이제서야 익숙한 나의 냉소가 다시 돌아온 것도 같다.



물론 온전히 다 돌아오진 못했다. 세상엔 아주 가끔씩 사람을 영영 바꿔놓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선택들이 거듭 우측 상단으로 치우치려 했기에, 나는 조금 더 왼쪽 아래로 클리크를 수정했다. 그래서 나의 냉소는 한결 머쓱해진 채로 어물쩡거리고, 나는 일단은 조금 더 싸우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내일 또 싸우려거든 오늘은 힘을 비축하자고, 벚꽃 핀 청계천을 뛰어보자고, 좋은 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자고, 가뜩이나 짧은 봄밤을 낭비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세상은 점점 더 혼탁해지고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가는데, 동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 늘어난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이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이 나중에도 자주 생각날 것 같다. 언제고 불쑥 마주쳐도 질끈 묶고 살자.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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