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25.04.29)

난춘광인

by 취생몽사

어제였나 얻그제였나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요며칠 계속 마주치던 사람을 또 봤다. 나는 언젠가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도 같다. 아마 지금은 사라진 전통주를 팔던 술집이었고, 바 형태로 된 그 가게의 사장님에게 전해들었던 것도 같다. 그 이는 개를 산책시키거나 담배를 태우며 참살이길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던 이인데, 사실 정체는 잘 모른다. 학생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백수같기도 하다. 옷차림은 말쑥한 편이나 왠지 모르게 몇 년 지난 옷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돈되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긴 머리는 그럭저럭 사람의 손이 닿은 듯하다. 요며칠 마주하는 그는 매일같이 편의점 앞에 앉아 혼자 소주를 병째 마시고 있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드는데, 두려움이나 연민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뭐랄까 광인들(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연대의식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서로만큼의 광기를 보는지도 모른다. 삶이 어제보다 오늘 더 내리막같아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 광기는 그 삶을 비웃듯 저 과거로 마저 오른다.



인류애는 술병 같아서 일단 뚜껑을 따면 금새 바닥이 난다. 이럴때면 내게 주어진 것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생활인 살아가는 게 그걸 허락하지를 않는다. 집은 다시 며칠 새 쓰레기장이 되었다. 이건 경고 신호일텐데. 쌓인 쓰레기를 그냥 보다가 그냥 침대로 들어가서 그냥 자고 나온다. 오늘은 반드시 집을 치워야할 것 같은데, 여전히 일을 다 못했다. 일에 집중을 잘못해서 그렇다. 언어없이는 생각하지 않을 때 행복한데, 언어도 없이 부유하는 감상들이 짜증스럽다. 지난 겨울, 아니 좀 더 멀리보면 지난 여름부터해서 내가 쌓아둔 흥을 다 써버린 것 같다. 거꾸로 매달아 흔들어도 한 방울 뭣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혼자 술을 마시러 나온다면 저 사람처럼 보이겠지. 잔도 없이 안주도 없이 소주병을 입에다 가져다대는 저 이가 불쌍하고 또 부럽다. 한 때 이 골목에는 저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같다. 그러니 의문이다. 맥도날드 옆 놀부 부대찌개에서 잠을 자던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나스퀘어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여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요즘은 왜 그런 사람들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저 이와 나같은 사람들인지.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다른 누군가가 여기를 채워가는 것인지.



일이고 뭐고 오늘은 그만 집에 들어가야겠다. 연구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담배를 태우면서 집 청소 계획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창호 사범 바둑 책과 기타 악보를 빼놓고는 전부 치워버릴 것이다. 왼손 중지 손가락 끝에 오랜만에 굳은 살이 다시 잡혔다. 오늘은 꽤 힘든 밤이 될 것일테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플라스틱 분리수거부터 시작하는 정상성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을 차례다. 마지막으로 버려야 것들도 이름이야 알고 있는데, 잘 될런지 모르겠다. 아직 봄바람이 차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을 때 갑작스레 스며 들어오는 바람처럼 사무치는 그리움과 후회가 그렇다. 여전히 난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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