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5일차

<백현진쑈 문명의 끝>

by 취생몽사

영화제에서의 마지막 영화. <백현진쑈 문명의 끝>을 봤다. 영화 상영 이후에는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화는 문명의 진보를 부정하며 변화일 뿐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문명은 지속적으로 변경 변화할 뿐, 특정한 가치 판단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현진은 인간이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없다고 믿는 것인가? 하지만 돌연 그는 ”사랑은 믿어요, 사랑 속에 살길이 있다고 생각해.“ 이야기한다. 사랑이란, 낭만화된 감정이 아니다. 증오와 연민이 동시에 가능한 양면의 감정이다. 공감과 친밀함, 호기심과 연민, 존경과 질투, 그 이상의 감정을 한 사람에게 품게 되는 일이란, 왜 살길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이 살길인 이유는 그게 여태껏 인류가 살아온 길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문명에 의해 그 형식이 조금씩 달라질지언정,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관계 속에서 태어나 관계의 단절도 관계의 성립도 필연인 인간의 아이러니는 사랑없이는 해소될 수 없다. 백현진은 김고은의 입을 빌려 ”나 사실 어제 일곱 명을 죽였어. 한 명은 밀어서 한 명은 돌로 한 명은 돌도끼로 한 명은 철제 기구로 한 명은 권총으로 한 명은 바이러스로, 또 한 명은 마음으로 죽였어.“ 마음은 사람을 살해하는 다음 단계의 도구라는 것일까? 아니다. 김고은이 죽였다는 일곱 명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으로 죽였다는 뜻이다. 사랑은 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감정의 극단이며, 어떤 이념보다도 인간을 실존적으로 붙들어매는 무게감이다.



백현진은 이 감정의 무게를 직면하는 인간을 통해, 문명과는 관계없는 근원적 윤리를 그려낸다. 그 윤리는 도덕적 명령이나 사회적 합의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감정의 파편을 감당하고자 하는 자의 태도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머리와 마음의 싱크로율을 높이려 해”라는 대사는 일종의 윤리적 선언처럼 들린다. 그것은 합리와 감성의 조율이 아니라, 괴로움을 견디는 리듬을 찾아가는 몸부림이다. 사랑은 그 발버둥으로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끝내 살아남기 위해 감정의 균형을 맞추려는 실존적 전략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백현진은 문명의 폐허 위에서 문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말한다. ”우리는 그래도 사랑할 것이다.“ 그 말은 낙관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내면 속에 불변하는 감정의 무게에 대한 고백이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공연에서 백현진이 보여준 공연은 몸으로 부르는 철학이자 영혼으로 스윙하는 방법이었다. 때로 격렬하게 흔들리는 그의 몸은 그 안에서 보다 거칠게 박동하는 영혼이 몸이라는 틀을 비집고 나온 사소함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아무런 소개도 아무런 멘트도 없이 그냥 걸어 들어와서는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강렬한 여섯 곡을 내리 부른 후에야 자신과 함께한 세션들을 소개했다. 마지막 곡을 하기 직전에 그는 ”한국은 망했지만, 여러분은 건강하세요.“ 한 마디만 남기고 공연을 마무리했다. 이 공연을 맨 앞자리에서 지켜보던 나는 인생의 음악 아티스트 목록에 처음으로 힙합 음악가가 아닌 사람이 자리하는 순간을 맛봤다. 아마도 삶의 바다 한 가운데 가장 깊은 곳에서도 짓누르는 사랑의 무게 속에서 이 공연을 떠올리며 수면을 향해 발버둥칠 수 있겠지. 아무래도 어떤 사람들에겐 사랑은 풀기 어려운 숙제가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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