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들
주말부터 논문 리비전을 좀 돕고, 어제 밤에는 술을 좀 마셨다. 오늘은 시뮬레이션을 새벽까지 해서 보고서 마무리했고, 내일 광양에 내려가서 해야할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자보 편집도 하고 지담 후원의 밤 행사 초대글도 썼다. 나이를 먹었어도 멀티태스킹이 잘 안 된다. 학생회할 때 휴학을 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에브리타임 게시물을 봐버려서 기분이 더 안 좋다.
자보 연서명 중에 직전 년도 총학생회장도 이름이 올라 있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 사칭한 모양이다. 아니 도대체 대장부로 태어나서(나는 사내 새끼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명의 도용이 웬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감사위원회 설치하겠다는 새끼는 패기라도 있지 않나? 거기다가 굳이 전총학생회장 이름 적고 낄낄대는 새끼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확실히 부족한 사람인 게 이렇게 머리가 뜨거워지면 줘패자는 것 말고는 별다른 사고가 진전이 안 된다. 거기다가 간만에 에타 익명 댓글들을 봤다. 아마 건너건너 우리와 연락이 되는 분이 나름대로 쉴드를 치고 있었는데, 대학원생이라 신분을 밝히고 계셨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 지능으로 대학원 졸업이나 하겠냐? 주어 없습니다~” 이런 댓글인 것이다. 생래적인 혐오감이 든다. 이게 진짜 고등교육을 받는 성인이 할 짓거리인가?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가? 너무 유치해서 내가 지금 무슨 판에 들어와 있나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아 잊고 있던 이 비릿한 맛, 이게 학생사회의 맛이다.
우리 톡방 이름은 ‘망령들’이고 지금 하는 짓거리를 요약하면 ‘파묘’쯤 된다. 연서 리스트를 보다보면 진짜 험한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래도 꾹 참고 이 비릿한 원혼들 제령하는 것인데, 그 덕분에 요 며칠 계속 악몽이다. 아마 서명한 사람들 중 몇몇도 그 악몽 한 스푼씩 떠먹었겠지. 그래놓고도 한강의 문장 빌려 사랑을 말해야 하는 이유를 머리로는 알고 있다. 다만 가슴이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머리와 가슴의 싱크로율을 높여야 한다던데, 이토록 따로 노는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영혼이 무너질 것 같다. 그걸 이해하는 것에 굳이 전기공학 박사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게 또 슬프다.
집은 또 엉망이 되고 있다. 최근 몇 주간은 달리기도 하지 못했다. 당장 이번주가 대회인데 걱정이 태산이다. 요즘 불쑥 그냥 적당히 결혼이나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할 사람 있냐고? 뭐 찾아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근데 당위가 없잖아. 이렇게 불안정한 삶의 일부를 외주맡기고 싶다는 저열한 욕망일 뿐이잖나. 그래, 결혼을 하게된다면 납득할만한 기조문을 쓰자. 결혼의 배경과 필요성, 결혼을 통해 발생하는 기대효과와 목표를 나열하자. 그리고 내 인생의 결혼을 영화로 만드는 생각을 한다. 배경음악은 모과가 좋겠지. “한순간 정말 다소 과장하면, 한순간 정말 모과만 있으면, 한순간 정말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네.” 요즘 매일 백현진으로 눈을 감고 백현진으로 눈을 뜬다. 아 이 아저씨도 결혼 안 했지,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