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의 <남산>

by 취생몽사

전주에서 백현진 공연을 처음 봤을 때,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공연장에는 진수영이 건반 앞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적당히 건반을 누르고 있었다. 별 예고도 없이 뒤이어 등장한 백현진이 세상 무심한 얼굴로 무대를 두리번거리면서 휘적휘적 걸어다니다 노래를 시작했다. 그것을 노래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는 노래 안에서 목소리를 내었으나, 그것은 가창이라기 보다 즉흥 연기에 가까웠다. 그때 처음 들었던 <남산>은 각각 두 사람과 남산을 향해 걷는 이야기였다.



먼저 백현진의 친구 A가 있다. A와 백현진은 낮술을 한 모양인데, 교보문고에서 나와 A를 만난 백현진은 을지면옥에서 낮술을 하고는 2차로 OB베어로 향한다. 거기서 A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울고, 그들은 술집을 나와 남산으로 함께 걷는다. 두번째는 A의 전처가 백현진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상황이다. 전처는 A의 소식을 아냐고 묻고, 백현진은 적당히 둘러댄다. 이후 전처와 백현진은 다시 남산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때 백현진이 듣게 된 얘기는 A의 어머니처럼 A가 뇌에 물이 찼으며, A는 그의 어머니처럼 모든 치료를 거부한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아니 이제 어제 발매된 백현진의 <서울식> 앨범 속 <남산>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단지 남산으로 함께 걸었다는 것을 울부짖는 백현진만이 있다. 사실 그가 노래하고 싶었던 것은 남산이 아닌지도 모른다. 남산은 남산이 아니어도 좋은 무엇인가고, 그곳을 향해 걷는다는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산을 A와 함께 걸으며 슬픔을 곱씹지만 도무지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있고, 남산을 A의 전처와 걸으며 간극을 곱씹지만 여기에도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남산이라는 장소는 타인의 삶에 내재된 슬픔과 그 거리감이 상호 교환되는 장소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 앞에서 백현진은 울부짖는다.



내가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빨리 죽고말 것이라는 그런 생각때문만은 아니다. 목적없는 삶에 잠시 내려앉은 것들이 어떤 속성을 띄는 것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삶은 여전히 바쁜 공무원의 역할을 하고 있구나. 대체 다들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