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25.06.24)

광증

by 취생몽사


여름엔 광증이 차오른다. 담배를 태우러 나가면 햇살이 포털사이트 정치 기사 댓글란처럼 내리쬔다. 천박하고 시끄러운 햇살에 눈돌리면 내 작은 방에 지난밤부터 쉬지 못한 에어컨이 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내 에어컨은 실제로 물을 뚝뚝 흘린다. 때론 얼음을 내뱉기도 하는데, 고등학교 이과에서 2년 이공계 대학에서 10년을 보내고 있는 나도 전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래 이 미친 세상에, 네 놈도 미친 것이다. 올해만 넘기자, 이번엔 진짜다.


광증이 더해갈수록 내 오렌지병...아니 오랜 지병이었던 품성론이 고개를 쳐든다. 나를 포함해서 이 세상은 벌레들로 가득하다. 어디서 파리떼가 꼬여서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고 그러니까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다른 계절이었으면 봐줬을지도. 야 이 개새끼야 니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 같잖은 호승심을 제쳐두어라. 나는 너같은 놈들조차 나를 알아주지 못해 서운한 것뿐이야. 우울증이 찾아와야 비로소 정신의 격이 높아지는 사내, 그것이 나다. 김대중 선생님 햇볕정책은 틀렸습니다. 어떤 인간은 햇볕이 강해질수록 껍질에서 몸을 더 잔뜩 웅크릴 수도 있답니다.


이 우울한 계절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렇게 믿고 있다. 찬 바람이 머리칼을 스칠 때쯤 에는 언제 그랬냐는듯 광증이 흩어지고 다시 유쾌한 시절이 온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이 계절에 가급적 사고를 치지 않고 가급적 무난히 보내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전어가 맛있고, 명석이가 예쁩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애서도 먹히지 않을 플러팅을 허공에 대고 해보자. 섬이 보인다. 나 홀로 배를 저어 시체같은 해안가에 발을 내딛는 그런 착륙의 계절이 필요하다.


투묘와 발묘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 네 잘못도 있고 내 잘못도 있고, 그리고 아무래도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붉은 실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진짜 붉은 실은 아니야. 오늘은 UMC의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 라이브를 듣다가 통곡했다. 저 사내는 저런 사내였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반대 아니냐고? 좆까는 소리말아라. 인생이 기니까 저렇게 예술가들 사는 게 힘든 것이다. 나? 나는 예술엔 관심이 없지. 그래도 뭔가 인생이 길다. 내일 아침 출근하면 또 느낄 것이다. 내게 인생은 출근길에 가늠하는 업무시간만큼이나 길다. 째도 되면 째고 싶다고, 장 뤽 고다르를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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