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한참 공사 중이다. 그러고 보니 웃긴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한 학교는 항상 어딘가 깨부수고 건물을 새로 올렸다. 학교엔 항상 어디 한 구석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공사장이 한참 공사 중이다라는 문장은 웃긴 문장이다. 제2공학관이 사라지고, 신공학관이 들어섰다. 농구코트를 엎어버리더니 주차장을 깔았다. 정운오IT교양관이 들어서고, 애기능 학생회관이 송현스퀘어로 리모델링되었다. 이제는 주차장을 다시 폐쇄하고 이공계 중앙광장을 만든다고 난리다. 들어선 건물들의 작명을 한심하다고 하기에 공모를 통해 정해진 이름인 ‘신공학관’ 530호에 근무하는 나는 이것도 전통이려니 한다. 내가 진정 짜증이 나는 것은 무심한 작명이라기 보다는 무심한 벌목들이다.
신공학관 앞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5년 쓰고 엎어버릴 농구코트를 새로 만들겠다고 베어낸 바 있다. 그 나무 그늘 아래에는 수도가 설치되어 있어 운동한 이들이 쉬거나 대학원생들이 모여 담배를 태우던 곳이다. 그 버드나무는 학교를 통틀어도 흔치 않은 거목이었다.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번 이공계 중앙광장 공사는 거목을 상대하는 대신 작은 나무들을 모조리 파헤쳐버렸다. 그 무심한 손속에 당한 것은 5년 전 버드나무를 파헤친 땅에 심어둔 나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원숭이길에 늘어선 플라타너스와 이공계 후문를 따라 늘어서 있던 아카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이공계 후문의 아카시아를 특히 귀히 여겼다. 늦봄 하늘이 코발트빛이 되는 저녁 술을 마시러 나서는 길에 맡는 아카시아 향이 내 인생의 늦봄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 사람들도 그 농담 따먹기도 그 웃음소리와 그 짜증과 울분도 이제는 다 사라졌다지만, 그래도 그 아카시아가 있어 피식 웃는 날이 있었다. 보라색 아카시아 꽃이 하늘 언저리에 닿으면, 그 뒤에 걸리는 달이 보기 좋았다. 아래로는 사람 손길 잘 닿지 않는 곳에 고양이 를 돌보는 아이들이 고양이 사료를 보관하곤 했고, 그걸 아는 탓인지 그 담벼락 언저리엔 애옹 소리를 내는 고양이가 걸터 앉아 있었다. 때론 감상적인 공대생 몇몇이 멈춰서 사진을 찍다가 누가 볼세라 후다닥 걸어나가는 그 나무들이 이제는 없다.
마침내 졸업을 앞두고 있자니 요즘 부쩍 학풍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어디 가서 학교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지만, 고려대학교의 학풍이라는 것은 대체로 얼추 정의롭고 제법 방탕한 것, 그런 게 학풍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내가 그렇게 살았고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무심한 공사판 앞에서 나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고려대학교의 학풍을 생각한다. 기억력 나쁘고 씀씀이 헤프다. 아둔하고 성급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집착한다. 전통은 박물관에 가져다 박고 그 정신은 휘발시킨다. 이렇게 적어보니 이것도 대충 내게 들어맞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지난 주말에는 안동에 다녀왔다. 지난 초봄의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가 선명했다. 침엽수가 자라던 지역은 온통 검게 타버렸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중간중간 버티고 선 활엽수들이 다시 푸른 잎을 낸다는 것이다. 타버린 산 아래에서도 다시 군데 군데 녹음이 어깨르르펴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구경했던 그 경이로움이 도시에선 산산조각이 난다. 아무래도 서울의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다. 빌어먹을 학교, 얼른 뜨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짜증도 환멸도 터져나오는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