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25.09.11)

by 취생몽사

연구실 건물 앞으로 세워진 벽이 높다. 이 허연 괴물은 공사장을 격리시키기 위함이겠으나, 공사 자체가 못마땅한 나는 어딘지 내몰린 기분이 든다.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주에는 포크레인 비슷한 것이 고개만 까딱 내밀고 있더니, 이번주에는 ‘방음용 에어벽’이라는 글씨만 크게 끔뻑인다. 가뜩이나 거북목에 어깨가 말린 나는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을 씻어내려고 가슴을 크게 편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친구가 이런 큰 공사가 있으면 딜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적당히 불편함을 토로하여 시공사로부터 뜯어먹을 것을 뜯어먹어야 한다고 했다. 되겠나? 당장 하루 아침에 담배를 태우러 옆옆 건물 언덕배기까지 내몰리는데, 잘도 단합이 되겠다. 신공학관의 평균적 시민의식은 조직된 힘을 발휘하기엔 인간이 덜 된 편이라, 나는 6년째 막힌 화장실 변기를 시발시발거리면서 뚫고 다닌다. 그러니까 이 똥싸개 새끼들 뭐가 되겠냐 이 말이다.


생각해보면 대학원 시절이란 대부분 벽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굴종의 시간이었다. 똑똑하게 굴지도 못했고 떳떳하게 굴지도 못했다. 그것은 업무적으로나 연구적으로나 마찬가지다. 무엇무엇일수도 있다는 식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아주 어중띤 인생이다. 양귀자 소설 주인공이라면 벌떡 일어나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외쳤겠으나, 스스로 물결같은 생, 흘러가는 대로 살며 미뤄둔 결과가 오늘의 무력감이다. 기댈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벽을 바라보며 굴종의 시간만 곱씹자니 영 못할 짓이다. 목적의식의 날을 좀 더 갈아보자. 이번 주에는 시뮬레이션 환경 구축 끝내고 토익스피킹도 공부해야지.


멍하니 이 흰 가벽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데, 왜 싸가지 없는 달은 남의 속도 모르고 휘영청 밝은가? 벽을 치고 사라진 이도 저 뒤에서 이 달을 보고 있나? 소리쳐도 닿지 않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무례가 용납될까? 가벽 위로 백석의 시를 불러와 청승을 떤다. 나누지 못한 일상이 제멋대로 출렁인다. 그래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슬픔과 사랑속에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 혼자 뛰는 러너와 어머니의 안부 문자, 이틀 전에 딴 사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어떤 여자들>과 <우연과 상상>과 <사랑은 낙엽을 타고>와 <도쿄의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