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지포라이터를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녀석의 부재를 느낀 것은 한 달쯤 되었고, 종종 집을 치울 때마다 찾아보기도 하였다. 떠난 지포는 말이 없다. 사실 떠나지 않은 지포도 말은 없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목놓아 지포를 불러도 그 녀석이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대학원 내내 나와 함께했던 지포는 졸업논문 작업을 시작할 때쯤 나를 떠난 것 같다.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지.
내 지포라이터는 정말 예쁜 지포다. 나무랑 자개로 장식이 되어 있는 라이터였다. 벚꽃 무늬의 분홍색 자개 장식은 내 자랑이었다. 수많은 지포를 봤지만 이보다 예쁜 지포는 없었다. 여기저기 떨어지고 구른 탓에 벚꽃 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 또한 세월의 흔적이라 생각하고 귀히 여겼다. 하지만 벚꽃 잎 다 떨어지기도 전에 이리 무심히 헤어질 줄은 알지 못했다. 사라진 물건들은 어디로 가는가? 현명한 마녀 맥고나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無)로, 즉 모든 것으로 돌아간다.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어버린 내 지포를 애도한다.
안의 심지나 부싯돌, 솜뭉치까지 수없이 직접 갈아끼웠기에 이제 사실상 테세우스의 지포라이터같은 녀석이다. 테세우스의 이야기는 결국 본질이 뭐냐 따져묻는 이야기인지라, 나도 그 지포의 본질을 따져 물어보았다. 그것은 아마 다소 어지럽고 구질구질하며 제법 화끈거리는 내 인생의 늦봄같은 것이다. 이제 여름을 향해 가는 나의 사계는 보다 땀이 나고 목이 마르며 새벽에나 자유를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지포를 잃어버리며 내 늦봄을 떠나보냈다.
연휴가 시작되었으나 본가에 내려갈 엄두는 나지 않아 오늘도 연구실에 출근을 할 생각이다. 그 전엔 간만에 러닝을 좀 해야겠다. 여름에 만난 내 가장 좋아하는 벗이 “열 번 뛴다하고 실제로는 두 번 뛰는 사람”이라고 힐난한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스무번 뛴다하고 네 번 뛰는 사람이 될게. 일주일에 스무번 뛰겠다고 얘기하는 사람과도 친구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네 번 뛰는 삼십대가 되고 싶다. 일주일에 네 번 뛰는 삼십대에게는 아무래도 지포라이터는 사치인 것이다. 내 삶의 오래된 슬로건인 여우와 신포도를 꺼내들고, 젖은 땅 위를 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