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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진 봄을 다시금 맞이하며

세월호 3주기 추모 대자보(17.04.06)

지난 3월 23일, 세월호가 3년의 숨을 몰아 쉬려 고개를 들었다. 그간 쓸쓸하게 광장을 맴돌던 문장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다. 마침내 마주한 세월호에 우리는 몸을 떨었고, 손을 마주잡았고, 연신 눈시울을 훔쳤다. 춥고 외로웠을 미수습자들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둠과 거짓은 빛과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랫말은 단순한 노랫말을 넘어 역사를 써 내리고 있다. 이제 많은 이들은 미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향해 함께 속삭이고 있다. ‘넘어지지 말고 천천히 올라오세요.’ 그러한 속삭임이 이 봄을 함께 열고 있다. 그러고 보니 1073일, 우리가 봄을 잃어버린 시간이다.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봄이 찾아왔다고 하여, 그것이 지난 길었던 겨울을 용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동시에 찾아온 봄날에도 여전히 볕이 들지 않아 잔설에 얼어붙은 세상의 언저리가 있다. 우리는 지난 3년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어떤 책임을 졌고, 아직 남아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지난 세월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비겁한 정권에 대해 기억해야 하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존엄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팽목항에서 시작된 촛불의 온기가 광장을 거쳐 다시 목포 신항에 가 닿기 까지 3년이 걸렸다. 그 지난한 시간은 분명한 진보이나 결코 최종적인 승리는 아니다. 박근혜는 고작 대통령 직에서 파면당한 것뿐이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악마적 상징과 그 기저의 가치들을 파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촛불을 들어올린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계속해 싸워 나가야 할 지 모른다. 더 나아가, 안전사회라는 구호가 비극을 경험한 사람뿐 아니라 모두의 상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자본과 권력이 결코 인간존엄 위에 자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모두가 함께 꽃 피울 수 있는 봄을 열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눈 앞의 승리에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자본과 권력 앞에 인간이 존엄함을 잃어가는 곳에서, 생의 의지를 꺾는 수많은 애수의 전선에서, 더 나은 삶이 기각되는 무수한 비탈길에서 우리는 인간과 존엄을 굳건히 결합시킬 의무가 있다. 어느 누구도 무릎 꿇을 필요 없이 생의 의지를 지켜 나가며, 더 나은 삶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3년 간 미뤄져 있던 봄이 마침내 찾아왔다. 겨우내 이 얼어붙은 광야에는 공존과 연대의 씨앗이 잠들어 있었다. 그 싹을 틔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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