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기묘한 숫자다.' 일주일 넘게 승민의 개표율을 지켜보던 무성의 앞에는 A4 종이 여럿과 펜이 놓여있었다. "6.76이라... 정의당의 심가보다는 많이 나왔으니 다행인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싶었지만, 그 역시 인간인지라 미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때 무성대장, 무간도, 무한의대검으로 불리던 그였다. 503이 무능하다고는 하나 최순실까지 다 들켜버릴 줄이야. 두 자리에 못 미치는 지지율을 바라보는 무성의 속은 계속 타들어갔다.
6.76이란 숫자가 2.6의 제곱임을 3번 검산한 끝에 확인한 무성은, 더 이상 검토할 것은 없겠다는 듯이 펜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 옛날 옥새를 들고 영도 대교에서 바람을 맞던 때가 좋았다. 유철이 허겁지겁 뛰어내려와 사정사정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그를 더욱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성태놈은 힙합인지 뭔지를 한다더니 갑자기 민요인 새타령을 부르며 날아가버렸다. 전당대회 때부터 경필을 지지했던 그를 선대위장 맡았다고 승민이 좋아해줄 리도 없었다.
YS께서는 '대도무문'이라 했던가. 무성 역시 큰 길에는 아무 막힘이 없다고 믿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가다보면 '건곤독보', 홀로 천하를 걷게 될 줄 알았다. 물론 홀로 걷는 것은 맞다. 다만, 그가 거닐 천하는 이 반도 위에는 없었다. 영도를 떠올리던 그는 항상 바라만 보던 일본에 생각이 머물렀다. 그래, 일본으로 가자. 가서 사시미도 먹고, 온천계란도 먹자. 사케도 몇 병 사오리라. 건곤독보가 다 뭐냐. 건곤독취하련다.
그렇게 무성은 홀로 일본으로 떠나 실컷 술을 마셨다. 그렇게 귀국하던 날 무성은 여전히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고작 물길 하나 건넜건만, 맥주고 사케고 어찌나 좋던지. 문가놈은 이 맛을 모를테다. 암 모르고 말고. 그런 무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성을 태운 비행기는 문가놈이 행정부의 수장인 나라에 착륙했고 무성은 알딸딸한 기분으로 입국장에 들어섰다. '간만에 실력발휘 좀 해볼까.' 수행원의 위치를 한 번 확인한 후에 가볍게 손목에 스냅을 줬다. 스르륵 챡.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들과 대충 말을 섞고 무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6.76이 어지럽게 적힌 종이를 치워버리고, 무성은 노독을 내려놓고 깊은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무성은 잔뜩 쌓인 부재중 전화를 마주했다. '옥새를 들고 튀었어도 이렇게 전화가 오지는 않았는데...' 허겁지겁 사태 파악을 위해 보좌관의 메세지를 읽어내렸다. 고작 캐리어라니. 순간 허탈해진 그는 짜증이 났다. 수행원이 보이길래 밀어줬는데 뭘 난리들인가. 하여튼 지지율도 안 나오는 정치인은 할 게 못된다. 무성은 다시 잠에 들었다. 꿈은 다시금 그를 유철과 함께 했던 자갈치시장으로 데려갔다. 잠에 빠진 무성이 여전히 미소짓고 있는 건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