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근황(17.06.08)
문장을 적기 시작한 것이 5년쯤 되었나 싶다. 지금은 다시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화끈거리는 문장들을 뱉어내느라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야 했고, 그때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진득하게 물게 되었다. 종이를 두들긴 시간과 한 움큼 내어준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은 원통하다. 휴학생이라고 하여 신선이 아닐진대, 이런저런 얘기를 써봤어도 자기소개서에는 온통 빈칸 아닐까 싶어서 그렇다. 그래도 나는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사실 글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란 정말이지 난망하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처럼 누군가 나를 좌절시키고 싶다면 허리보단 손가락을 꺾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내게 글을 끄적이는 것은 이제 거의 버릇의 영역이다. 전엔 누구나 좋아할 글을 쓰고 싶어 몸이 달았다만, 이제는 재능과 열정이 비례하지 않음을 느꼈는지라 시답잖은 글을 적고 쿡쿡거리는 것이 더 즐겁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글을 읽고 쓰고 서로를 문장으로 보듬는 일상. 그것이야말로 내가 그리는 약속의 장소인 것이다.
격정을 가라앉히되 부지런하게 사고하고 진득하니 글을 쓴다. 여전히 내가 체득하지 못한 것들이다. 때로 격정으로 문장을 굴리니 나 스스로가 디딘 자리를 잊어버리고, 게으른 사고의 결과물은 읽는 재미가 없다. 무엇보다 진득하지 못하면, 내 글 대부분이 그렇듯 미완성의 글로 남아버린다. 공부가 부족해 손재주가 아닌 머리로 글을 쓰라는 말도 내겐 아프다. 배움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을 즐기는 편은 못 된다. 그 덕에 살갑게 밀려오는 문장들이 아니면 영 책장이 넘어가질 않고, 고요하다 못해 쥐죽은 듯한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매 어느 것도 준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 느려도 가벼운 산보 속에서 치열하고 또렷한 눈빛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요즘 다시금 글을 쓰는 것이 막막해졌다. 하지만 조금 헛기침을 하고 문장을 적자면, 그것이 대단한 고민은 못 된다. 방금 적었듯이 지금은 이런 불연속이 익숙한 편이기에 그렇다. 깊은 물 속에서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처럼, 방향도 모르고 발걸음 소리도 듣지 못한 채로 눈앞의 덤불만을 손으로 헤집는 기분. 언제나 인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우리네 일상은 그런 인간들을 다발로 엮어내는 신의 놀이인가. 그러나 무시로 찾아오는 무기력함의 망망대해에서도 분명한 것은 내가 올라탈 파도는 언제고 존재한다는 것. 그걸 성장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성장은 불연속의 필요조건은 아니겠으나 충분조건은 되는 법이다.
매혹적인 단어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고, 문장의 숨소리를 키워내는 문단에 탄성을 내뱉는다. 때론 목 끝까지 차오른 격정을 눌러 담아 쓴 문장들의 빛깔을 읽는다. 그럴 때면 글쓴이와 시공간을 뛰어넘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기타를 튕기거나 술을 마시는 것보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단어를 연주하고 연거푸 문장을 들이키는 것. 장마를 제하면 반도의 여름은 내게 조금도 즐겁지 않다고 글을 썼더니 이틀 동안 비가 내렸다. 아무 상관 없는 두 사건이 내 일상 속에서 결합하여 즐거움을 주는 것은 홀로 맛보는 유쾌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내게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화두가 된다. 조금 더 느리고 가볍게 걷는 법, 그 속에서도 치열함을 잃지 않는 법. 글은 내게 그것들을 계속해 속삭인다. 이를테면 오랜만에 꺼내 든 이 악보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 말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 해도 두 다리가 주는 즐거움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