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은 무교동북어국 Run을 했다. 러너라면 다들 잘 알다시피 이딴 Run은 없다. <흑백요리사2> 보고 ‘술빚는 윤주모’의 황태국 보다가 떠올린 코스다. 정릉천 제기동 부근부터 뛰어서 청계천 상류로 향한 다음, 광교까지 뛰는 코스다. 정확히 5km 정도가 나온다. 문제는 아침 날씨가 영하 10도였다는 것인데,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마지노선이 영하 10도이길래 옷 두겹 챙겨입고 비니까지 쓰고 길을 나섰다. 이렇게 뛰면 평화시장과 세운상가를 거쳐 종로로 향하는데, 대충 생각해봐도 역사적인 코스다. 서울의 심장부를 절제하는 기분으로 러닝을 했다. 그에 걸맞게 팟캐스트 <붉은오늘>을 들었다.
90년대 학생운동사를 다루고 있는 두번째 에피소드인데 아직 89년을 다루고 있다. 대체 90년대는 언제 나오는지요? 패널 중 한 명이 김준수 위원장인데, 내가 한 네 번쯤 들었던 운동권 3대 구라 얘기를 온에어로 하고 계셨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알려주자면 백기완/황석영/유홍준이다. 역시 문인은 구라쟁이들이 해야 하는 법이다. 유홍준은 아니지 않냐고? 뭔 소리인가? 유홍준만큼 소설쓰는 인간이 또 어딨다고. 유홍준의 일제 쇠말뚝 소설은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그게 <파묘>다.
아무래도 날이 추워 그런가 뛰는 중간 중간 근육이 삐걱거리는 탓에 조금 속도를 조절하며 뛰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덕분에 오픈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다. 알 두개를 시키고 앉자마자 밥-국-물김치-계란후라이가 뒤따라 자리했다. 이 곳의 시스템은 조금 특이한데, 알 추가 외에는 별다른 요금제가 없다. 그냥 사람 수대로 돈을 받는다. 두 그릇 먹으면 어쩌냐고? 어차피 밥이랑 국은 달라는 대로 계속 준다. 내가 이걸 먹으려고 어제 막걸리 한 잔 하자는 유혹도 뿌리치고, 영하 10도에 5km를 뛰었다. 진짜 맛있는 해장국은 술을 안 먹고도 해장하는 기분이 든다. 계란후라이를 후루룩 마시고 황태국을 한 술 떠먹으면 내가 정말로 이 도시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삼키듯이 아침을 먹고 나와 담배를 태우는데, 푸르스름한 새벽 거리에 멍한 표정들의 사내들이 하나 둘 보인다. 중년의 사내들이 커피를 들고 초점 없는 눈으로 담배를 태운다. 내가 사랑하는 이 도시가 사내를 주조하는 방식은 다소 재미없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 옮겨갈 도시의 별명도 ‘노잼 도시’라고 생각하니 조금 답답해졌다. 거기서는 몇 년이나 살게 될까. 나이를 먹으며 더욱 거세진 역맛살과 방랑벽으로 인해, 나는 점차 유목인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래도 난 새로 구한 직장에 나름의 야망이 있고, 이번 집은 제법 잘 꾸며 놓을테니 가끔 놀러오도록.
아직은 사람을 초대하고 싶지 않은 안암동 집에 들어가려는데 문득 슬펐다. 언젠가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오게 되려나? 어떤 영화관, 어떤 거리, 어떤 술집.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언제라도 돌아가게 하는 마법같은 문장들. 지난 주말에 학생회 친구 결혼식이 있었는데, 모인 사람들을 쭉 둘러보니 한 열 명쯤은 앞으로도 계속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7년에 사람 농사를 잘 지은 셈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흉작이 거듭되니 작년에는 한 명 정도 떠오른다. 떠나가는 사람들은 딱히 줄어드는 기미가 없는데, 정말로 늙어죽을 땐 친구가 몇명일지. 황태국 잘 먹고 이런 생각뿐이라니, 나도 이제 재미없는 사내구나. 나이 먹는 게 마냥 즐겁지가 않다고, 난생 처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