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자유를 변주하는 바다 위 왈츠

by 취생몽사

캐리비안의 해적은 애초 트릴로지로 시작한 영화가 아님에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해적 영화다. 물론 당초 1편으로 완결된 이야기이기에 서사가 산만하고, 인물들의 감정선이 매끄럽지 않다. 그러한 단점에도 이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조니 뎁의 신들린 연기와 화려한 해상전투 씬 외에도, 작품 속 해적들의 세계관이 대중들을 자극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자유라는 주제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춤을 추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해적들에게 바다란 삶의 터전이자 생활의 공간이고 마음의 고향이다. 동시에 바다는 파도나 다른 해적 및 해군과 맞서 싸우는 전쟁터로, 곧 높은 확률로 자신의 무덤이 되는 공간이다. 삶과 죽음의 이중주로 연주되는 바다라는 공간 속 해적들은 육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보다 훨씬 낭만적이며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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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장면 장면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독특한 재구성으로 다가온다. 특히 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엘리자베스 스완에 의해 여성의 위치가 재구성되는 부분은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를테면, "고통이 뭔지 가르쳐줄까? 코르셋을 입어봐!"와 같은 대사에서 드러나듯 엘리자베스의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은 코르셋과 관련된 것들인데, 흔히 코르셋은 여성 억압에 대한 은유로 사용된다. 엘리자베스는 닻을 올려 자유라는 바람을 제대로 받아 해적들의 유리천장을 부숴버리며 후에는 해적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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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주인공인 잭 스패로우의 경우 그를 상징하는 물건은 나침반이다. 나침반은 소유자가 가장 원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를 통해 블랙펄과 잭 스패로우는 변변한 지도 하나 없이 잘도 모험을 이어나간다. 나침반과 함께 하기에 잭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과 재치 뿐이다. 잭은 항상 자신을 선장(Captain)이라 부를 것을 요구하지만, 사실 극 중 그는 배를 빼앗긴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해적답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와 정의로운 행동에서 나온다. 차라리 그는 조금 식상할 수 있으나, Invictus의 구절 속 선장에 가깝다.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동시에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윌은 고아이자 해적의 자식으로 천대받던 대장장이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거치며 뛰어난 해적으로 거듭나게 되고, 마침내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여 사랑을 이루고, 아버지를 계약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등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다. 그래서 자유란 억압을 폐기하는 도구이자, 끊임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이고 그 와중에 영혼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그리고 바다는 그 모두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그것이 해적이 상징하는 낭만적인 자유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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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영화 속 죽음 역시 자유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해적들의 뱃노래로 추정되는 Hoist the colours의 마지막 구절은 Never shall we die이지만, 이는 해적 정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육체의 죽음을 맞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운명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빌런들에서 드러나는데, 1편의 바르보사와 2,3편의 데비 존스가 그렇다. 그들은 저주에 걸려 있거나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어 보관하는 등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그들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결국 둘 모두 잭에 의해 육체적 죽음을 맞이한다. 다시 말해, 운명에서 해방된다.(그런 의미에서 잭은 자유의지 그 자체와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물론, 해적정신-끊임없는 자유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식 같은 것들-의 죽음은 훨씬 이전에 이뤄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어쩌면 해적들에게 육체적 죽음이란 크라켄에게 달려드는 잭의 모습처럼, 또 하나의 도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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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함선인 블랙펄 선원들(Crew)의 모습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해적의 그것이다. 다양한 인종은 기본이고, 목각 눈알이나 난쟁이 등의 장애인, 더 나아가 고아로 자랐거나 가난으로 인해 어렵게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를 거지와 도둑이라 부르는 이들이다. 그들은 협력하여 항해하고 적들과 싸우며, 서로가 끈끈한 우정으로 묶이게 된다. 영화는 종종 이 선원들을 형편없다고 묘사하지만, 결국 주인공들과 시련을 함께 견디는 것은 이 친구들이다. 플라잉 더치맨 같은 노예 선원들에게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자유와 정의, 열정과 도전의식, 유쾌함과 우정-은 노를 젓는 선원들 없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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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성들을 향한 성희롱은 쉴 새 없이 등장하며, 식인종에 대한 묘사 역시 문제적이다. 시리즈 서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신이자 마녀인 바다의 여신 칼립소/티아 달마 설정은 조금 진부하기까지 하다. 바다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그대로 투영된 이 캐릭터는 미소지니의 전형인지 모른다. 다만 그러한 지엽적인 부분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 테다. 해적은 해적일 뿐이나, 그렇다고 하여 왜 그들이 고귀할 수 없단 말인가? 캐리비안의 해적은 분명히 멋진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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