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16.06.26)

청소하기; 불 끄고 자기

by 취생몽사

자취에는 몇 가지 재밌는 사실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취방이 주거 영역의 범주를 넘어서, 정신수련의 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깨끗했던 집이 더러워지는 것에는 별 이유가 없지만, 더러웠던 집이 깨끗해지는 것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나는 과감히 '남자 대학생 자취방'의 전형이라 불릴만한 공간에 혁신을 추구해야 했다. 비위생과 난잡함, 약간의 괴기스러움이 한 데 담긴 공간은 그 자체로 내게 위협이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신 건강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불을 끄고서는 잠에 들지 못 했고, 자기 혐오와 자존감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로, 방바닥에 눌러붙어 있었다. 학원 알바를 하기 위해 방문을 나서지 않았다면, 내게 바깥 출입을 강제한 그 자본의 부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정신이 반쯤 빠진 채로 체크무늬 셔츠의 체크 갯수를 세고 있었을 지 모른다.


잠에 덜 깨서 반쯤 감긴 눈으로 화장실에 가다가, 문에 걸어놓은 내 셔츠를 보고 화들짝 놀란 것이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성북천을 뛰었고 오늘은 기필코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알바를 마치고 늦은 밤까지 친구와 어울리다, 집에 들어와 청소를 끝마치니 이미 시간이 1시가 넘었다. 탄산 음료를 사와 1달 째 굴러다니던 양주를 마셨다. 톨스토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어허 이깟 추위가 다 뭐람! 이렇게 술 한 잔이면 충분한 것을!" 이라고 외쳐보고 싶지만, 이 곳은 한국의 여름이었고 나는 에어컨을 틀기 위해선 새로운 멀티탭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년 2월엔 새로운 방을 구하리라고 7666번쯤 마음을 다 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면도를 하고 손톱을 다듬었다. 여기저기 깨물어서 성한 곳이 없는 손톱을 보며 "명석아 대체 몇 살이니?" 하고 잠시 비웃어준 다음, 불을 끄고 이런 저런 글을 써보고 있다. 오늘은 불을 끄고 잘 것이다. 내일 아침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이 방마저도 충분히 밝아질 때까지 어둠에 파묻혀 있을 테다. 요리에 데코를 하듯, 괜히 한 번 뿌려본 방향제 냄새에 행복해졌다.


킁킁. 베개도 한 번 빨긴 빨아야 겠구나. 내일은 다우니 냄새 폴폴 나는 베개를 베고 잘 테다.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적어도 지금 내 야망은 화장실 한 구석 보라색 통 속에 출렁이는 섬유유연제인가 싶다. 내일 퇴근 후의 야심찬 계획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오늘은 푹 자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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