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근황(17.07.01)

농활 단상

이건 농활에 대한 사소한 단상이다.

첫 날 사과나무 가지를 하도 부러뜨린 탓에 '낭패나 다름없는 서울촌놈'들은 사과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죄송합니다, 삼촌." "됐고 다들 XX 삼촌네 가서 돌이나 주버라." 다음 날 아침 XX 삼촌의 트럭이 왔고, 나는 도로교통법 같은 소리는 쑥 집어넣고 짐칸에서 산능성이만 바라보았다.

도착한 곳엔 이제 1년이나 되었을까 싶은 사과나무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미 삼촌의 아버지는 와서 일을 하고 계셨고, 부랴부랴 호미를 들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흙을 만지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방아기계를 돌리는 것은 항상 기본이었고, 온갖 밭일(콩, 대파, 냉이, 머위 등등)이 항상 준비되어있던 시골 친할머니 댁 덕분이다. 헌 흙을 위로 퍼올리고 새 흙과 거름을 다시 밑으로 내려보낸다. 그렇게 흙은 인간의 노동으로 순환하며, 농업은 지속가능함을 보장받는 산업이 된다. 음, 이건 책상에서 하기 좋은 소리고, 그냥 허리가 무척 아프곤 했다.

그렇게 삼촌과 삼촌의 부모님 두 분, 나를 비롯한 농대원 넷이 일을 시작했다. 나는 슬슬 저려오는 허리를 신경쓰며 삼촌의 부모님을 힐끗 곁눈질했다. 내 친할머니는 허리가 완전히 굽어지셨다. 적어도 내가 태어난 이후론 항상 그랬다. 다행히 삼촌의 부모님들은 그렇진 않았지만, 쭈그려 앉은 삼촌 어머님의 모습이 어딘가 낯에 익어 조금 슬펐다. 그래서였나, 자꾸 어머님을 막 대하는 삼촌의 아버지와 삼촌이 슬슬 짜증이 났다. '경상도 남자라서...'와 같은 인종주의적 사고가 문득 들기도 했다. 그렇게 오전 일을 했다.

짜증은 점심을 먹고 나서 조금 더 치밀어올랐다. 상 위에 당신 그릇을 올려놓지 않는 어머님의 모습도 짜증이 났고, 밥을 먹자마자 삼촌의 아버지와 삼촌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정확히 같은 자세로 누워 티비를 보길래 짜증을 넘어 허탈해졌다. 어머님 혼자 7명의 식사자리를 치우시길래, 식기를 정리하며 좀 도울 일 없냐 물었더니 연신 손사래를 치신다. 내가 이들의 일상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내가 전적으로 옳다해도 남의 집 일에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다시 밭에 나갔다.

흙이 곧 어머니라고? 그럴 듯 하다. 어머니라 호명하며 그 분들의 희생과 그림자 노동을 착취하고, 거름만 줘가면서 끊임없이 지력을 착취하는 셈 아닌가. 아니, 이건 화전에 가까운 지 모른다. 어머니들의 일생은 한 평생 휘리릭 불에 타 사라지고 그걸 착취하며 남편과 자식들은 먹고 사는지 모른다. 그렇게 자식을 키워놓았더니 이제는 남편 노릇하는 이가 둘 되어있는 이런 농가처럼 말이다. 돌아와서 밥을 하며, 내 어머니와 할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께 나는 그럭저럭 키울만 한 아들이었나?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신 할머니의 일생은 어떠했는가?

착잡한 마음에 담배를 태웠다. 안동의 산골은 풍광이야 기가 막히다. 다만 나는 힐링이라 떠들기에 조금 조심스럽다. 내가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떤 삶의 너절한 방식을 엿본 것만 같다. 누군가를 겉핡기로 파악하고 타자화하는 이런 식의 감상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이런 식의 감상을 적어내고 말았다. 오랜만에 나는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앞서,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내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이건 농활에 대한 사소한 단상이다. 하지만 때론 사소함이란, 핵심이 세상의 틀을 비집고 나온 것이라는 말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작가의 이전글 성북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