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꿈.
어머니가 유치원의 보조교사로 일하기 시작하신 것도 한 3~4년쯤 되었다. 아버지가 잠시 직장생활을 쉬던 시기, 공인중개사 시험 공부를 하시다가 포기하신 것은 그 보다 조금 더 오래전의 일이다. 그나저나 당신께서 품고 계신 '대학을 가지 못 했다.'라는 한을 언뜻이나마 눈치챘던 것은 그보다 조금 더 되었다. 언제나 무심한 아들놈들이 그렇듯, '눈치를 챘다.'라는 말과 '이해했다.'라는 말 사이에는 조금, 다소, 꽤나 간격이 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수원에 내려갔다가 "이제와서 선생님 자격증은 무리겠지?"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신 딸아들 뻘 되는 친구들이 자격증을 갖고 유치원 신입 교사로 왔다고도 들었다. 어머니의 말투는 "순두부랑 콩나물 좀 사올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가볍게 심부름 가듯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하고 싶으면 해요. 늦은 게 어딨어? 그냥 일단 뭐 해보는 거지." 어머니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고, 나는 그 날 콩나물 볶음인가 순두부 찌개인가를 먹었다.
지난 여름 이화여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위상이 다른 감정 속에 혼란스러웠다. 뷰티니 웰니스니 하는 그 기만적인 학위 장사에 진저리치면서도, 가끔 저것들 대신에 유아교육과가 들어서서 어머니가 대학에 다니시는 상상을 했다. 아버지는 퍽 가정적인 사람이셨고, 나는 두 분이 꽤나 잘 맞는 편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어린 나조차도 슬슬 깨닫고 마는 불안과 고독, 이상향의 삶이 당신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당신이 바라는 당신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죄송함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실망으로 침전하기 때문이다. 휘몰아치는 경쟁의 폭풍 속에서 잔인하고 굳건히 우뚝 솟은 학벌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이다. 대학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무너뜨려도 모자랄 판에, 더 높이 개척하겠다며 미래니 창조니 하는 말들이 대학 앞에 붙여지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어떤 미래와 창조는 종종 어떤 파괴와 그 파편 위에서 이뤄지는 법이다. 그 위에 발돋움할 개척하는 지성이라 기업에 의해 호명받는 학생들은 과연 나와 같은 자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난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부모님과 한 바탕 싸우던 날, 어머니가 "너는 평생 꿈만 먹고 살 꺼냐!"고 소리질렀고 나는 미리 준비된 답변인 "내가 알아서 해!" 라고 맞대응했다. 그런데 그 답변은 때려맞춘 격이다. 물론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해나갈 수 밖에 없으나, 그 질문을 온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어머니께서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현실'이 무언지 궁금해지곤 한다. 꿈만 먹고 살아 보기에는 오빠들 학비가 모자라, 꿈의 문턱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는지. 그 마음이 채 말씀하시지 않았던 현실이었던 것 같아 나는 조금 서글프다.